▲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을 소재로 한 영화 ‘밀정’ 스틸컷. (제공: 위너브라더스 코리아)

‘황옥 경부 폭탄사건’ 중심으로
여러 가지 실제 사건 엮어 극화
의열단-친일파 암투·회유 담아
김지운표 액션·개그 역할 톡톡

송강호, 일본 경찰 이정출 맡아
복잡한 심리 섬세하게 연기해
특별출연 이병헌, 존재감 최고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시작은 스파이 영화에 대한 끌림이었다.… 서구의 냉전 시대 못지않은 질곡의 근대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근대사를 소재로 한 스파이 영화를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과 의열단의 조직과 계획을 방해하고 파괴하려고 들어온 조선인 일본 경찰 간의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을 스파이 영화의 장르적 쾌감 속에 그리고자 했다.” -김지운 감독

영화 ‘밀정(김지운 감독)’은 일제강점기인 1923년 실제로 있었던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토대로 당시 의열단에 일어났던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을 엮어 극화한 영화다. ‘밀정’이라는 단어는 남의 사정을 은밀히 정탐해 알아내는 사람을 말한다. 서구적 개념인 스파이, 첩자 등의 단어가 생기기 훨씬 이전인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독립운동 세력 내부에 끊임없이 밀정을 심었고, 항일 인사들 사이에서도 변질자가 나오는 등 이념과 체제의 속에서 같은 민족끼리의 대립이 들끓었다.

‘밀정’은 이 시대를 배경으로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 ‘이정출(송강호 분)’과 그가 작전 대상으로 삼은 항일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의 새로운 리더 ‘김우진(공유 분)’을 주축으로 벌어지는 암투와 회유 작전을 그린다.

▲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을 소재로 한 영화 ‘밀정’ 스틸컷. (제공: 위너브라더스 코리아)

◆실제 사건 바탕으로

1923년 경성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으로 인해 잠잠했던 독립운동의 불길이 솟아오른다. 의열단의 핵심세력 ‘김장옥(박희순 분)’이 자금 확보를 위해 문화재를 팔려고 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밀고로 ‘김장옥’의 위치가 노출되고, 일본 경찰이 들이닥쳐 ‘김장옥’은 위기에 처한다. ‘김장옥’과 임시정부에서 함께 일했던 ‘이정출(송강호 분)’은 일본 경찰이 돼 그를 생포하려고 하지만 ‘김장옥’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마지막 남은 총알로 생을 마감한다.

의열단의 새로운 리더가 된 ‘김우진’은 ‘이정출’을 이용해 폭탄을 경성으로 들이라는 ‘정채산(이병헌 분)’의 명령에 따라 ‘이정출’에게 접근한다. 반대로 ‘이정출’은 ‘김우진’을 통해 ‘정채산’의 정보를 얻어오라는 ‘히가시(츠루미 신고 분)’ 조선총독부 경무국 부장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그렇게 ‘이정출’과 ‘김우진’은 서로의 정체와 의도를 알면서도 속내를 감춘 채 인간적으로 가까워진다. 잡아야만 하는 자들과 잡힐 수 없는 자들 사이에서 서로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숨 가쁜 교란 작전이 시작된다.

영화는 김지운표 고풍스러운 액션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영화 초반 지붕을 날아다니면서 보여주는 액션이 몰입도를 높인다. 그러나 김지운 감독만의 색이 드러난 영화라기보다 ‘밀정’ 자체로 독보적인 장르라고 봐도 무관하다. 영화는 사건을 따라가지 않고 인물의 심리 변화를 좇아간다. 중간에 들어가는 김지운 감독 특유의 개그가 분위기 전환에 도움이 된다.

▲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을 소재로 한 영화 ‘밀정’ 스틸컷. (제공: 위너브라더스 코리아)

◆송강호와 공유, 김지운의 만남

이 작품은 실제 사건과 인물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1923년 일제 통치의 상징과도 같은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으로 인해 일제는 독기가 바짝 올라 있던 때 김시현 의사를 중심으로 의열단원은 조선 총독부 등 주요 통치시설과 총독부 요인을 암살하는 공작을 추진했다. 국내에선 파괴력이 뛰어난 폭탄을 제조한 것이 불가능해 헝가리 혁명가인 폭탄 제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상해에서 폭탄을 대량 제조한 의열단은 경성으로 폭탄을 반입하려 했다.

폭탄을 들여오는 과정에서 현직 일본 경찰 경부였던 황옥이 김시현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는 의열단 내부 밀정의 밀고로 김시현과 의열단, 황옥이 체포되면서 세상에 공개됐다. 하지만 황옥의 정체성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의열단의 2차 거사를 위해 일제가 심어 놓은 밀정이라는 설과 일본 경찰을 가장한 의열단원이라는 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영화에선 ‘이정출’을 현실의 생존과 애국의 대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로 그렸다. 사실 ‘이정출’ 감정 변화의 개연성이 부족하지만 영화 몰입도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송강호라는 배우가 있기 때문이다. 송강호는 나라를 저버린 죄책감과 독립에 대한 염원 등 ‘이정출’의 복합적인 심리 변화를 심도 있게 풀어나간다. 그의 얼굴, 손짓 하나하나에 인물의 복잡한 심리가 보인다. ‘김우진’ 역을 맡은 공유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의열단 리더로 분했다.

▲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을 소재로 한 영화 ‘밀정’ 스틸컷. (제공: 위너브라더스 코리아)

‘하시모토’ 역을 맡은 엄태구도 눈에 띄었다. 엄태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이루는 하시모토로 분해 눈길을 끌었다. 엄태구의 한쪽 눈썹을 움직이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매섭게 쏘아대는 연기는 보는 이들을 소름 돋게 했다.

특별출연한 이병헌과 박희순도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영화를 채웠다. ‘정채산’ 역을 맡은 이병헌은 등장하는 장면마다 “와…”라는 탄성을 자아냈으며, 박희순은 전설적인 인물인 ‘김장옥’으로 영화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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