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를 설치하고 그 내역을 신문에 보도했던 대한매일신보. (제공: 예술의전당)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1904년 일제는 한국의 경제 파탄을 위해 한국정부로 하여금 일본으로부터 차관(借款)을 도입하게 강요했다. 또 통감부를 설치하면서 한국을 식민지 시설로 갖추기 위한 경찰기구의 확장 등의 방침을 마련했다.

이로 인해 1907년까지 들여온 차관만 1300만 원으로, 그 총액이 대한 제국의 1년 예산과 맞먹었다. 그러자 같은 해 2월 대구에서 서상돈이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 1300만 원을 갚아 주권을 회복하고자 국채보상취지서를 작성해 발표하면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됐다.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난 지 올해로써 109년.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큰 물줄기였던 역사의 현장을 기록물로써 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전시가 마련됐다.

예술의전당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는 18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서울서예박물관 3층에서 ‘국채보상운동기록물 특별전-국채보상운동,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를 공동개최한다고 밝혔다.

예술의전당은 “오늘날 세계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국가부채를 극복하는 하나의 대안으로 개인의 권리보다 국민으로서의 책임정신을 앞세운 국채보상운동정신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자 마련했다”고 밝혔다.

▲ 경남 창원 향교 교임 조희정, 김병홍이 국채보상운동에 동참을 권유하고 설득하는 회문(回文, 돌려 읽는 글)에는 “의연금이 많고 적음을 떠나 서로에게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문서의 왼쪽에는 10여개의 인장이 찍혀있는데 여러 마을에서 이 문서를 돌려 읽었음을 보여준다. (제공: 예술의전당)

이번 전시에서는 국채보상운동의 발단, 전개, 확산, 결말을 이해할 수 있는 엄선된 50여점의 유물과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참여한 안중근, 이준 유묵 등을 볼 수 있다.

대한매일신보 1910년 1월 30일자에는 “안중근의 온 집안은 모친 조마리아 여사를 중심으로 동참하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준 열사의 강직한 기개와 웅혼한 기운이 풍겨 나오는 이준 열사 유묵은 구본진 박사의 소장품으로 이번 전시에서 처음 전시된다.

예술의 전당은 서울을 시작으로 부산과 대전, 광주 등으로 순회 전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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