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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7주년 기획] 의궤, 한국만의 소중한 문화
장수경 기자  |  jsk21@newscj.com
2016.09.04 09: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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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의 선진화·세계화를 위해선 ‘법고창신’의 정신을 가지고 전통문화와 현대문화가 상생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현재 전통문화는 서양문화에 비교하면 입지가 좁은 게 현실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도 전통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자리를 지키는 살아 있는 문화재들이 있다. 바로 형태로 헤아릴 수 없는 문화적인 소산인 무형문화재들이다. 무형문화재는 물질적으로 정지시켜 보존할 수 없는 연극·음악·무용·공예기술·기타 등 문화재 전반을 말한다. 형태가 없는 기능 또는 예능이기 때문에 나라에서는 ‘문화재 보호법’에 따라 이를 보유한 사람을 대상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이들이 전통문화를 지키는 이유는 무엇이며, 현대문화와 어떻게 상생하고 있는지에 대해 인터뷰를 통해 들어본다.

 

   
▲ 황치석 조선왕조문화예술교육연구소 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황치석 조선왕조문화예술교육연구소 소장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전통의 맥은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황치석 조선왕조문화예술교육연구소 소장은 전통 보존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황 소장은 의궤의 백미인 ‘반차도’를 재현했다.

‘의궤’는 왕실과 국가의 주요한 행사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조선왕조는 왕실의 혼례, 장례, 제사(종묘사직), 잔치, 세자·왕후의 책봉, 궁궐 건축, 국왕의 행차, 친경·친잠, 대사례(大射禮), 어진 등을 상세히 기록으로 남겼다.

전 세계적으로 의궤는 조선왕조와 대한제국밖에 없어, 그 사료적 가치는 매우 크다.

특히 그는 의궤의 ‘꽃’인 반차도 재현에 모든 정성을 쏟았다. 이는 왕실 행사 주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문무백관이 늘어서 있는 의식의 차례가 생생히 묘사돼 있다.

의궤는 직접 손으로 그린 것도 있고, 목판으로 외곽선만 찍고 색을 덧칠한 것도 있다. 하지만 황 소장은 선 하나하나를 직접 그려 반차도를 재현했다. 사랑과 정성을 듬뿍 쏟아서인지, 그의 반차도 속 인물들은 살아있는 듯 생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그는 ‘철종가례반차도’와 ‘왕세자 입학도’를 재현했다.

“‘철종가례반차도’는 철종(조선 제25대 왕)과 철인왕후의 혼례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이 그림은 조선왕조 의궤 가례반차도 중 가장 길고 화려합니다.”

‘왕세자 입학도’도 재현했다. 이 그림은 순조 17년(1817) 3월 11일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하는 의례절차의 그림·축시로 구성됐다. 기존 의궤는 책으로 제작돼 2면씩만 볼 수 있었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 철종가례반차도는 두루마리(24m)로, 왕세자 입학도는 절첩(10m)으로 제작했다. 덕분에 행사 전모를 볼 수 있다.

황 소장은 의궤 제작이 후대에도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흔히 사람들은 창작 작품만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클래식도 처음 그대로 계속 재연하고 있습니다. 전통의 중요성 때문이죠. 역사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 전통의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또 전통의 맥이 이어지려면 ‘궁중화 영역’에서 의궤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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