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주년 기획] 한국 종교 간 화합운동 제대로 이뤄지고 있나… 7색 종교인의 진단
[창간 7주년 기획] 한국 종교 간 화합운동 제대로 이뤄지고 있나… 7색 종교인의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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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지일보(뉴스천지)

CRP·URI·종협 등 종교연합 운동하지만 결과는 미흡
특정종교에 대한 차별 현상… 7인 모두 부정적인 평가
종교차별 앞장서는 정치인·공무원에 대해서도 쓴소리

[천지일보=종교부 특별취재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테러, 분쟁으로 인해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고, 희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현실을 뛰어넘어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다문화, 다종교 사회를 이루며 이웃과의 협력과 공존을 바라는 공동체문화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의식을 일깨우기 위한 변화와 노력에 종교계 또한 함께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본지는 창간 7주년을 맞아 교인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각 종교의 지도자들이 현 종교계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상생’을 위해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지 들어봤다.

인터뷰에 응한 한국종교연합 박남수 상임대표, 한국이슬람교 최영길 이사장, 어윤경 성균관장, 한국자유총연맹 종교특별위원회 상임대표 이기철 박사, 조계종 역사문화사업추진위 상임부위원장 혜총스님, 원불교 문인협회 김덕권 명예회장,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 배동철 장로 등 종교인 7명의 답변을 엮었다.

-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한국종교연합(URI-Korea) 등 종교연합단체들을 통해 이웃종교 간 화합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실제 상생하는 계기가 됐다고 보는가.

박남수(박): 우리나라에는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한국종교연합’ 등 3개의 연합단체가 있다. 이들 단체는 국가의 중요한 국민 관심 사안이 있을 때 국민의 다수가 종교인이기 때문에 종교인의 바람과 희망을 국정에 반영토록 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설립됐다. 그러나 (설립 초기보다) 아쉽게도 최근 들어 종교지도자의 역할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종교지도자들에게 문제가 있음인지 국가 지도자들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원인과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생각하고 분석하고 고쳐나가야 할 때다.

배동철(배): 종교 연합단체들의 종교인 상호 간의 교류와 이해 증진을 위한 노력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종교 화합과 상생을 지향하는 종단 간의 노력은 관용과 헌신이 필요한 일이므로 이를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노력의 범위가 점차 더 넓어지기를 기대한다.

이기철(이): 각 교파·종단들이 종교와 교파를 초월해서 서로 싸우지 말고 ‘하나가 되자’는 운동은 참 좋다. 하지만 그렇게 이웃종교 간 화합운동을 진행하고 나서 뒤돌아서면 여전히 자기 교파주의로 돌아가는 일부 종교연합단체들이 있다는 게 문제가 아닐까. 세계에서 가장 교파주의가 심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생각한다. 외국 사람들은 타인의 말을 잘 들어주고, 협력을 잘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같은 민족끼리 종교 간 화합이 잘 안 된다고 본다. 종교를 초월한다는 말이 좋으니까 다 모여드는데, 모였다가 헤어지면 그것이 하나도 실천이 안 되고, 여전히 자기 교파주의로 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국교회의 교파 문제도 여전히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김덕권(김): 종교 간 화합운동이 진행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성숙단계는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아직도 일부 종교에서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성격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이 작은 몸짓들이 세상에 경종을 울리고 실제로 종교 간 상생상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종교의 미래는 암담하다고 본다. 실제로 KCRP나 ACRP, 뉴욕의 URI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종교연합은 요원한 것 같다. 현실은 그런 기관이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원불교를 비롯한 몇몇 종단이 이끌어가는 형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기득권을 가진 큰 종단의 합력이 절실하다.

- 개선할 점이 있다면.

혜총스님(혜): 종교연합운동을 할 때 각각 종교들이 모이면 자신의 종교 소개만 하고 상대방의 종교에 대해서는 판단해서는 안 된다. 깊이 알지도 못하면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면, 결국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게 되지 않겠나.

최영길(최): 상생을 위해 운동하는 단체가 많을수록 좋긴 하지만 그것이 자기들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돼선 안 된다. 크고 작은 종교·종단들이 많이 있는데 다 하나가 되고 회원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마음을 열어야 한다. 서로가 마음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비난해선 안 된다. 또 내 종교만이 진리라는 생각을 내려놔야 서로 상생하고 교류할 수 있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각각의 장점을 한데 모아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마음으로 동귀일체(同歸一體, 인간의 정신적인 결합) 하는 것이 곧 종교인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박: 가끔은 종교 화합을 위한 프로그램의 효능에 대해 의심을 해 본 적도 있다. 규모가 큰 종단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정치·사회적 이해관계를 앞세워서 사회의 어려움을 도외시하는 것을 내용으로 삼고 시행한다면 이는 폐지돼야 할 것이다. 대신 칭찬을 통해 공동체를 위하는 종교인들을 발굴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 같다. 예를 들면 이웃종교인들에 대한 칭찬릴레이 같은 사업들을 통해서 특정 종단이 아닌 여러 종교인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확산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대안 가운데 하나다.

김: 문제는 종교가 이 사회의 소금 역할을 해야 하는데, 종교 자체가 썩어가는 데에 있다. 일부 유명 종교인들이 범법자로 전락하고 있다. 여간 개탄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제는 새로운 종교가 나와야 한다. 구시대의 종교로서는 더 이상 이 사회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 시대에 걸맞는 새 종교, 새로운 교리, 새로운 종교인들이 나타날 때도 되지 않았나.

어윤경(어): 논어의 첫 구절이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것은 바로 배우는 것이야말로 모든 화합·상생의 기본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교인이면 종교인답게 각자 맡은 바 책임과 역할을 잘해나간다면 화합·상생의 사회가 이뤄질 것이라 생각한다.

- 일각에서는 ‘상생’을 외치고 있지만 사실상 ‘편협’ 속 상생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소수 종교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기득권 종교들만 모여서 상생을 외친다는 비판이다.

최: 서로 이해하지 않고, 교류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이다.

이: 기득권이든 기득권이 아니든 성직자 곧 목회자가 선한목자가 돼야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상생을 외치는 성직자 자신들이 부패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다른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성직자인 자신들이 정직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말씀으로 새로 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듭나야 그 성직자를 중심으로 상생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혜: 과거 기득권 종교는 불교와 유교였다. 이 종교들이 기득권을 주장했다면 다른 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다종교가 정착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게 기득권을 크게 주장하지 않았다고 본다. 시각을 넓게 봤으면 좋겠다.

- 이슬람 등 특정 종교에 대해 공공연하게 차별을 정당화하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최: 물론 한국에서는 아직 무슬림 인구가 적다 보니 특정 종교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전 세계에서 천주교와 기독교를 나눠 비교해 보면 이슬람교도의 수가 가장 많고 천주교와 개신교를 합해 비교해 보면 이슬람교도의 수가 두 번째로 많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인이 이슬람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또는 얼마나 모르고 있을까가 아니라 한국인들이 이슬람을 얼마나 잘못 알고 있을까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박: 모든 종교지도자는 창도 당시에는 기존 종교에 의해 이단으로 취급당한 역사가 있다. 각 종교인들은 자신의 종교가 박해받던 시기를 떠올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슬람은 세계 3대 종교로 일컬어지고 있다. 요즘 문제가 되는 이슬람국가(IS)는 이슬람권에서도 이단으로 평가받고 있으니 그런 이슬람을 IS와 꼭 동일시하는 것은 무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오히려 이를 통해 이슬람을 배격한다면 괴물과도 같은 IS의 농간에 빠져드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어: 배움·생각이 괴리돼 있기 때문이다. 종교 간 갈등의 불씨는 올바른 생각과 가르침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안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알지 못하고 모른다고 하면서 배우지 않으려는 태도는 편견과 아집, 불통을 낳는다. 서로 대립·갈등이 일어나는 사태를 두고 역사는 폭력·전쟁으로 혹은 돈·권력으로 해결하려고 했을 때 항상 문제가 돼왔다.

배: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아가는 동안 문제는 언제나 있어왔으며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때 많은 문제들이 점진적으로 해소될 것이라고 믿는다.

김: 소수종교나 신흥종교를 차별한다는 것은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왜 신흥종교가 생겨나는 것인가. 더 이상 구시대의 종교로는 이 사회와 도탄에 빠져있는 수많은 중생들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따라서 신흥종교를 차별하기 전에 스스로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잘못한 것이다. 종교 자체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무턱대고 비판하면 자신의 종교를 위해 꼬투리를 잡는 IS와 다를 게 무엇인가. 결국 종교는 좋은 것을 하고 나쁜 것을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이다.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다.

- 종교차별에 앞장서는 정치인과 공무원 등도 있다. 어떻게 봐야 하나.

혜: 정치인들이 종교차별에 앞장서는 게 종교에 크게 도움이 되질 않는다. 제3자의 입장에서는 혐오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종교를 이용해 자기 정치를 하려고 하면 자신이 오히려 손해를 볼 뿐이다.

김: 정치인이나 공무원은 공인(公人)이다. 이 사회의 공복(公僕)이라고도 한다. 그런 국민의 심부름꾼이 감히 종교차별을 한다니, 차별이 있다면 시정해야 할 그들이 그런 행태를 보인다면 결코 주인인 국민들을 모시는 자세는 아닐 것이다.

이: 민주주의 사회이다 보니 표를 의식하고 정치적으로 자기들이 살 구멍을 찾고 있는 흐름이다. 교인들이 많고 교세가 큰 기독교를 등에 업는 등 종교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어느 특정종교에 치우치면 안 된다. 종교의 자유가 있고, 종교는 모두에게 평등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

최: 옳지 않다. 정치지도자라 할지라도 종교의 자유가 보장돼 있으므로 누구나 자기 종교를 가질 수 있다. 단, 정치지도자는 자기 종교에 구속돼선 안 된다. 다종교 사회를 이끌어가야 할 정치지도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한 국가의 정치지도자가 될 수 없다.

박: 국가에 따라 종교와 사회와의 관계가 결정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교 분리를 명확히 선언한 나라다(헌법 제20조 제2항). 그러니 공무원이 종교차별에 참여하는 것은 공직자로서 기본에 당연히 문제가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가끔 이러한 문제가 드러나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배: 우리는 공인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기대한다. 그럼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며 사는 동안 문제는 은연중에 있어 왔고 또 있을 우려가 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양심에 따를 것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충실할 것을 기대하며 그리 되면 더 좋은 사회가 되리라 믿는다.

- 진정한 상생을 위해 각 종교가 가져야 할 자세는.

최: 첫째는 각 종교의 본연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현세에 사는 우리는 인간을 위해 뭘 할 것인가. 또 이 세상을 떠나 내세로 가게 될 사람을 위해선 뭘 해줄 것인가. 그것이 진정한 각 종교의 본연 사명이라는 얘기다. 또 하나는 타인의 종교를 인정하는 자세를 기르는 것이다. 타인의 종교를 인정·존중하지 않으면 상생은 불가능하다. 내가 상대방의 종교를 비방하면 상대방도 내 종교를 비방할 것이다.

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의 보편적인 가치라 할 수 있는데 이를 실천하면 많은 문제들이 해소될 것이다.

이: 대화를 위해 타종교를 인정해야 한다. 서로 부정해서는 안 된다.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고, 협력하고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이를 부정하면 대화가 끊어지게 되는 것이다. 서로 인정해야 한다.

어: 종교는 사회에 해야 할 역할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예의와 도덕, 윤리를 바로 세우고 사람과 사람 간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일이다.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타자·타종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관용, 배려 등을 통해서 다 함께 살아가는 평화로운 세상을 열어나가기 위해 노력해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대화·교류 등이 필요하다. 내 종교만이 최고의 진리라는 생각을 하기 전에 타종교의 목소리도 귀 기울여보는 태도가 각 종단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 각계각층에도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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