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민아·강병용·김빛이나 기자] 지금 한국은 ‘갈등 사회’라고 불릴 만큼 세대와 지역, 이념, 계층 등 다양한 측면에서 수많은 갈등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우리나라 사회갈등 지수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국 중 27위(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이며, 갈등의 사회적 비용은 국내총생산(GDP)의 27%(삼성경제연구소 조사)에 달한다.

이 중 제3자를 통한 조정과 화해 시도, 대화 등의 방법으로 층간소음, 공동주택 관리비 집행 불신, 노점상 문제를 해결한 사례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봤다.

◆층간소음 갈등, 이웃 간 소통으로 푼다

▲ 서울시 은평구 제각말 마을카페서 열린 ‘주민자율조정위원’ 양성교육의 모습. 주민이 갈등 해결 소망나무를 만들고 있다. (제공: 서울YMCA 이웃분쟁조정센터) ⓒ천지일보(뉴스천지)

YMCA 이웃분쟁조정센터
주민자율조정위원회 구성
주민협약 주민 87% 동의
인사하기·마을텃밭 등 활용

지금 우리 사회는 층간소음 갈등으로 폭행·살인 사건까지 일어나고 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해졌을 정도로 층간소음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2일 경기도 하남시 한 아파트에서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다 위층 60대 노부부에게 흉기를 휘둘러 부인을 숨지게 한 30대가 구속됐다.

서울YMCA 이웃분쟁조정센터는 이런 층간소음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었다. 센터는 삶의 질과 소음을 염두에 두지 않은 아파트의 대량 시공과 이웃 간 소통 단절, 공동체문화 파괴 등에 층간소음의 원인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서울 은평구에 주민자율조정위원회(주조위)를 구성했다. 주조위는 노인회장, 마을 원로, 부녀회 임원, 아파트 관리사무소장, 층간소음 피해 주민 등 12명으로 꾸렸다. 이를 통해 갈등 이해와 관련 사례 공유, 갈등조정 실습 등으로 활동했다.

주조위는 특히 주민자율 활동의 필요성과 이웃 간에 가까이 지내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했다. 또 ‘인사하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엘리베이터에 소통 게시판을 만들어 ‘고맙습니다’ ‘알립니다’ 등의 문구를 적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주민 아이디어 워크숍을 토대로 주민협약 초안을 구성하고 직접 주민 동의를 받으러 다녔다. 주조위는 전체 주민 87%의 동의를 얻어 전 세대에 ‘뛰고 싶은 아이는 운동장으로 보내기’ ‘야간에는 청소기를 사용하지 않기’ ‘애완동물이 짖지 않도록 하기’ 등의 내용이 담긴 주민협약서를 전 세대에 배부했다.

아울러 주민 갈등은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텃밭, 도서관 등 사람이 모일 수 있는 활동을 병행해 지속 가능한 주민 화합과 갈등 예방이 가능토록 했다.

평소 아래층과 층간소음 분쟁이 있었던 아파트 주민 이모(60대, 여, 서울 은평구 진관동)씨는 “평소 소음이 생겨도 문제가 생길까봐 그냥 참았는데, 관리사무소를 통해 이웃갈등 조정 신청을 하고 주조위가 직접 개입해 아랫집과의 대화로 갈등이 해결됐다”고 말했다.

주조위가 운영하는 주말 텃밭을 가꾸는 김모(40대, 여, 서울 은평구 진관동)씨는 텃밭을 가꾸면서 이웃의 생활 패턴을 알게 돼 서로 배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주건일 서울YMCA 이웃분쟁조정센터 팀장은 “윗집과 아랫집 갈등을 서로 술 한잔 하고 풀거나, 윗집과 아랫집을 잘 아는 이웃이 중재자 역할을 해 합의하게 하는 등 나름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공동주택불신 해결한 ‘멘토건축사’

▲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소재 한 공동주택 옥상에서 고양시 관계자와 멘토건축사, 주민이 함께 방수공사를 점검하고 있다. (제공: 고양시 주택과) ⓒ천지일보(뉴스천지)

아파트 관리비용 두고 갈등
건축 전문지식 부재가 원인
멘토건축사 도입 후 변화
공동주택 관리만족도 63.5%

아파트 관리비 집행을 두고 관리주체와 입주자 간 신뢰가 형성되지 못해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건축전문지식이 부족한 입주자는 아파트(공동주택)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추가 관리비용의 타당성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와 반대로 관리주체는 공사를 맡기는 용역업체에 적정공사비를 지불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이 두 관계가 상호 신뢰하지 못하면서 민원으로 이어지고 심하면 법적 대응으로 가는 상황까지 만든다.

이 같은 상황을 겪는 지자체 중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시민 비율이 전체의 약 80%로 다른 시에 비해 아파트 거주 비율이 높은 경기도 고양시가 해법을 마련했다. 고양시 주택과는 고양시건축사회와 업무협약을 통해 공동주택 관리주체와 입주자에게 건축전문지식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공동주택 멘토건축사’를 운영하고 있다.

멘토건축사는 아파트 관리에 대한 상시자문과 장기수선 계획, 기술 지원, 건축·토목·설비·조경 등에 대한 표준공사비 산정 컨설팅 등을 재능기부 형식으로 제공한다. 멘토건축사의 자문으로 공동주택 관리주체의 투명한 관리비 집행을 유도하고 공사 전문성을 확보해 행복한 아파트를 만들어 간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14년 6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멘토건축사에는 고양시 관내 건축사 80여명이 참여했다.

멘토건축사 운영 후 고양시 공동주택 분쟁 민원은 연간 1229건에서 1125건(2015년 기준)으로 104건(8.5%) 감소했다. 고양시가 입주민과 관계자를 대상으로 공동주택 관리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63.5%(2015년 기준)가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양시에서 아파트단지를 관리하는 우국익(55, 남) 소장은 “멘토건축사는 건축자재의 적합 여부, 설계도면 준수 여부, 마감처리 등을 점검해줬다”며 “건축전문 지식이 부족한 사람도 쉽게 알 수 있도록 설명해 주니 고마웠고, 점검에 함께했던 입주자대표도 만족했다”고 말했다.

멘토건축사로 재능을 기부한 김양빈(56) ㈜건축그룹건축사사무소 소장은 “전문가로서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돼 좋았고, 점검을 나갔던 현장으로부터 공사가 잘 마무리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포기없는 소통으로 해결된 노점상 갈등

▲ 경기도 부천시 심곡동 부천마루광장에 설치된 햇살가게 모습. 햇살가게는 판매대 규격을 정하고 3인 2매대로 통합하는 방식 등으로 운영한다. ⓒ천지일보(뉴스천지)

3년간 200회 넘는 대화 나눠
기업형 퇴출, 3인 2매대 운영
시민 “깨끗한 거리 보기 좋아”
노점상 “단속 걱정 없어 만족”

“예전 부천역 진짜 정신없었죠. 여기저기 난립한 노점상 때문에 거리도 지저분하고 통행도 불편했죠. 지금은 정말 깨끗해졌어요. 이렇게 정비가 되니까 좋은 것 같아요.”

시민 이수연(43, 여)씨가 기억하는 과거 경기도 부천시 심곡동 부천역 광장의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다르다. 질서 없이 늘어선 천막 노점상 대신 ‘햇살가게’라는 옷을 입은 노점이 시민통행에 불편을 초래하지 않는 곳에서 규격에 맞춰 운영되고 있다.

지자체별로 노점상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운 ‘골치 아픈 일’로 통한다. 부천시도 지난 2012년까지 단속 위주의 노점 정책을 실시했지만, 한계를 느끼고 생계형 노점은 허용하면서 기업형 노점은 퇴출하는 ‘노점 잠정허용구역제’를 실시했다. 그러나 이를 노점 말살 정책으로 인식한 노점단체들은 집회 등의 방법으로 강경하게 반대했다.

부천시는 노점 갈등 해결을 위한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3년간 200회가 넘는 협의와 간담회, 설명회, 개별면담 등을 통해 시 노점정책을 공유하고 서로 간의 입장을 수용하고 조정하는 절차를 거쳤다.

3년간의 소통 끝에 기업형으로 운영되거나 주류를 판매하는 노점은 퇴출됐다. 판매대 규격(3.8m×1.9m) 내에 3인 2매대로 통합 영업하는 방안도 나왔다. 부천시의 노점상 수는 2011년 505개에서 2015년 305개로 40% 감소됐다. 전국 최초로 노점상과의 공동 업무 협약도 체결했다.

부천역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김모(45)씨는 “단속 걱정 없이 깨끗한 환경에서 장사를 할 수 있어 만족한다”며 “빨리 돈을 벌어, 내 명의의 작은 가게를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재천 부천시 도로사업단 가로정비팀장은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을 통해 노점상, 지자체, 시민, 상가 등의 다양한 입장과 시각을 하나로 만들 수 있었다”며 “지금까지 쌓아 올린 신뢰 관계를 유지면서 장기적으로는 노점상 자립 지원 등을 통해 노점상 ‘제로(Zero)화’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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