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윤 행복한통일로 대표 / 을지대 겸임교수 

 

필자는 어린 시절을 시장에서 나고 자랐다. 북한식 표현대로 장마당 세대인 셈이다.

부산이라는 대도시에는 보기 드문 역사와 규모를 자랑하는 5일장이 열리는 구포시장이 바로 그곳이다.  어린 시절 학교 하굣길에 5일장이 열리면 평소보다 늦게 집에 도착하곤 했는데, 5일마다 열리는 장이지만 이것저것 구경거리도 많고 밀집된 사람들 사이사이를 빠져나오는 것이 여간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니었다. 그 정도로 시장이라는 곳은 사람들이 모였고, 소통했고 부대꼈다.  

대학시절 처음 사회주의 이론을 접했을 때 시장을 부정해야 한다는 논리는 늘 필자의 뒷덜미를 잡았다. 아무리 계획경제라 하더라도 자신들의 일과시간 이후에 생산한 물품이나 농산물들을 서로 교환하기 위해서라도 시장이라는 것이 필요할 텐데, 이것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이론이라는 것이 시장(장마당) 세대였던 필자에겐 여전히 의구점이었다.

지구상에 존재한 그 어느 사회주의 국가보다 더 교조적이었던 북한당국이 뙤기밭(집주변의 소규모 개인밭)을 허용하고, 400여개에 달하는 장마당을 운영하는 것을 보노라면,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 어느 날 뚝딱 만들어진 이론에 의해 좌우될 수 없는 유구한 역사의 현장임을 새삼 더욱 절실히 느낀다. 

400여개에 달하는 장마당이 북한전역에서 운용될 때, 그것을 보고 자란 세대들을 소위 필자와 같은 장마당 세대라고 하는데, 이들이 향후 북한변혁의 주역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다. 실제 북한과 같은 폐쇄적인 사회에서는 장마당과 같은 열린 공간에서 자본주의의 맹아를 배우고 익힌 세대들이 장차 북한의 미래주역이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필자는 공개할 수 없는 북한 지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선생님, 제가 북한의 장마당 미래가 궁금한데요. 장마당의 확산 즉 시장경제의 확산이 북한의 변화 동력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냥 민중들의 생활을 연명하는 차원으로만의 기능에 멈출까요. 우리는 소위 장마당 세대라는 20, 30대의 청년층의 역할에 기대를 걸고 있는데, 기존 장마당 세대의 미래는 어떻게 될른지요” 하고 말이다.

상대측에서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물론 인간의 사고라는 것이 자신이 속해있는 시공(時空)의 영역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익히 아는 내용이지만, 변화를 준비하는 사람이나 세력들에게는 하나하나의 사고와 언어, 그에 따른 행동은 잘 짜인 그물망처럼 촘촘히 세상을 조망하고 있음은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리라.

“시장의 확산이 북한의 변화 동력으로는 될 수 없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장마당 세대는 수령 독재에 대한 충성도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장마당 세대를 혁명세력의 주력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장마당 세대의 세계관 형성의 제한성 때문입니다. 그들의 사상의식은 현 수령 독재의 외면자로서의 제한성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반독재 의식에서 대항의지로까지 세계관이 상승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교육이 필요한데, 맑스와 엥겔스, 레닌도 모두 무산자가 아니라 소부르죠아 인텔리들이었습니다. 혁명의식이 어느 계층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나는가 하는 것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나라의 최고 통치자 계층과 최하층 피통치자 사이의 독재정치를 지시받고 집행하는 계층에서 일어납니다. 남한의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가 그렇고 고려시대 무신반란도 그렇습니다. 또 모택동이나 주은래의 경우도 그런 계층입니다. 따라서 북한의 혁명계층은 남한사람들이 가장 증오하는 국가보위부나 인민보안부의 상층인물들이 아닌 지방의 보위부나 보안부의 하층 공무원들, 기동타격대 대원들과 지방주둔 군부대들의 하층 군관들과 사관 병사들입니다. 외교성원들의 이탈도 중요한데 어쨌든 이들이 혁명을 주도한다면 장마당 세대들과 계층들은 반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최초로 북한의 간부들에게 전하는 8.15 경축사 메시지의 울림이 여전한 지금, 그동안 우리가 너무 협소하고 수동적인 차원에서만 북한변화를 갈망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며, 남북한 장마당의 소통과 부대낌을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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