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의 문화 창] 가을의 소리를 들으며
[전경우의 문화 창] 가을의 소리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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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계절이 바뀌고 있다. 낮에는 매미 울음소리가 여전하지만, 밤이면 가을벌레 소리가 들린다. 폭염이 꺾이고 여름이 물러가는 때라 매미 소리도 기운이 없다. 칠년을 땅 속에 있다 겨우 한철 울다 가는 미물이기에 그 짧은 시간이 더욱 야속해 보인다. 기껏 보름 남짓 살면서,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울다만 가는 그 세월이 허망할 것도 같다. 매미가 자신의 삶이 허망하다 여길 리 만무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 마음이 그렇다는 것일 뿐. 매미는 그렇게 울다 가는 게 제 운명이다. 우리들도 매미처럼, 짧은 세월, 잠시 울다 가는 게 아닐까.     

시인 박재삼은 매미를 두고 이렇게 노래했다. ‘매미 울음소리에/ 우리 마음을 비추는/ 한낮은 뒷숲에서 매미가 우네/ 그 소리도 가지가지의 매미 울음.// 명명한 명명한 매미가 우네.’ 시인은 매미 소리를 ‘명명’ 하다 하였다. 그 소리가 귀에 밝고 쟁쟁해 명명하다고 한 모양이다. 엄기창도 매미를 시로 썼다. ‘매-애앰 매~애앰/ 매미가 울고 있다./ 노래를 부르기도만도 아까운/ 짧은 생애인데/ 매미의 목숨이 눈물로 녹고 있다.’ 

여름의 불청객 모기도 곧 맥을 못 추게 될 것이다. 약을 뿌리고, 향을 피우고, 전기충격으로 지져 죽이고, 별의 별 수를 다 써도 여름이면 기적처럼 돌아오는 모기다. ‘모기소리처럼 작은 목소리’라고 하지만, 한밤중 어둠 속 귓가에 울리는 매미 소리는 전투기 소리 저리가라다. 모기와 싸우는 것은 부질없는 짓, 모기장에 숨어 피하는 게 상책이다. 

김형영은 ‘모기’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모기들은 끝없이 소리를 친다/ 모기들은 살기 위해 소리를 친다/ 어둠을 헤매며/ 더러는 맞아 죽고/ 더러는 피하면서.’ 그렇게 맞아 죽어 가면서 덤비는 것도 다 저 살자고 하는 짓. 매미가 온 몸으로 우는 것도, 모기가 죽을 각오로 피를 빠는 것도 결국 제 자손 길이 보전하고자 함이니, 이 또한 숭고한 일이다. 요즘 모기들은 아파트에 숨어들어 겨울에도 살아남는다. 여름이 갔다고 모기 걱정이 온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맘 때 밤이면 들을 수 있는 풀벌레 소리는 평화롭기 그지없다. 올여름 지독한 더위를 견디고 무사히 살아남은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삭막한 도시의 아파트에도 가을벌레가 운다. 가을벌레는 여치나 철써기 매붙이 베짱이 쌕쌔기 같은 여치 무리가 있고, 왕귀뚜라미 쇠귀뚜라미 뚱보귀뚜라미 같은 귀뚜라미 무리가 있다. 어느 것이든 이 벌레들이 가을밤에 멋진 합창을 하는 것이다. 

고려 때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 궁녀가 궁중에서 귀뚜라미를 키웠다고 기록했다. 1930년대 서울에는 가을이면 귀뚜라미 장수가 나타났다고 한다. 왕귀뚜라미를 키우면 우울증을 낮추고 두뇌가 발달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일본에서는 왕귀뚜라미가 노인들의 반려곤충으로 사랑받고 있다. 

우리들 마음에도 귀뚜라미 소리처럼 맑은 기운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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