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의 세상보기]언론의 피난처?
[최상현의 세상보기]언론의 피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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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현 주필

 
버뮤다, 바베이도스, 바하마, 버진 아일랜드, 몰디브, 케이먼 군도 등은 이름난 휴양지이다. 작은 섬나라들이지만 천혜의 자연 경관을 자랑한다. 사시사철 잘사는 나라의 돈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아주 이사를 와 정착하는 부호들도 많다.

바베이도스와 바하마는 특히 불륜 행각의 사생활로 세상을 뒤흔든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는 이곳에 갈 때 1400만 파운드짜리, 우리 돈으로 대략 266억 원 하는 자신의 호화 요트를 이용한다. 이 요트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그를 괴롭히고 있는 ‘사생활’의 의미인 프라이버시(Privacy)호다. 이 배에서 지금은 그의 불륜 때문에 사이가 멀어진 스웨덴 출신의 부인 노르데그린과 바베이도스에서 호화 결혼식을 치르고 난 후 신혼의 밤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그것 또한 공교롭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섬나라들은 조세의 피난처(tax haven)로도 유명하다. 소득세나 법인세를 전연 내지 않아도 되는 곳(tax paradise)이 있고 내더라도 세율이 낮아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더구나 스위스 은행의 예금처럼 거래의 비밀이 철저히 지켜지기 때문에 세금을 회피하고자 할 때는 더욱 도피의 유혹을 강하게 느낄 만한 섬나라들이다. 그래서 이곳에 다국적 기업의 역외자회사(Offshore Subsidiary)들, 핫머니나 각종 펀드와 같은 금융관련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들이 은밀히 둥지를 튼다. 이들 섬나라 말고도 이 같은 조세 피난처는 전 세계 여러 곳에 산재해있다. 각 국은 조세 피난처에 둥지를 튼 이러한 기업들의 세금 포탈을 찾아내기 위해 치열한 조세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치고 빠지는 솜씨가 교묘하고 기민하기 때문에 도피 세력과의 싸움은 마치 미국이 포착이 잘 안 되는 적과 싸우는 테러와의 전쟁만큼이나 힘든 것이 아닐 수 없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난 90년대 말 외환위기 직후 말레이시아 라우만 섬 등에 근거지를 둔 도피 금융 회사들과 조세분쟁을 겪었다.

OECD(경제 협력개발기구)는 작년 4월 조세 피난처를 제공하는 국가들의 명단을 블랙리스트 4개국, 그레이(grey) 리스트 38개국 등으로 등급을 매겨 발표했었다. 이들 나라에 대해서는 세계 주요국 모임인 G20을 중심으로 강한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 조세 회피의 온상을 없애기 위한 이런 노력들이 점차 실효를 거두어 가는 것 같기는 하다, 그렇지만 근절에 이르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조세 피난처를 제공하는 국가들의 협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피난처가 돼주는 가난한 나라들의 입장에서는 도피 회사들이 자국에 둥지를 트는 것이 벌이가 되면 되었지 손해날 일은 없다. 따라서 도리어 이들을 반기고 보호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지만 조세 피난은 세계 어느 나라에 있어서나 마찬가지로 공공의 적이다. 전란(戰亂)이나 자연재해, 혹은 권력의 핍박, 기아, 개인적인 불행으로부터 탈출하는 피난과는 다르다.

그런데 최근에는 언론의 피난처라는 말이 등장해 관심을 끈다, 그것은 일단 조세 피난과는 다른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IPI(국제언론인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작년(2009년) 한해 멕시코, 필리핀 등지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110명의 기자들이 취재보도 현장에서 살해당했다. 이밖에 체포ㆍ구금ㆍ실종된 언론인들의 수도 허다하다. 뿐만 아니라 정부나 거대기업, 부자들을 비판하다가 소송에 걸려 고통당하는 언론사와 언론인들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 우리 같은 자유 민주국가에서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심한 박해가 세계 도처에서 행해지고 있다. 우리도 과거 군사정권이나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언론이 이와 유사한 혹독한 수난을 겪었지만 세계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완벽하게 구가하는 나라는 지금도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언론이라는 것은 한 나라의 민주주의의 성숙도만큼만 키가 자라는 것이어서 언론이 누리는 자유라는 것이 나라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북대서양의 어업전진기지, 인구 32만 명의 작은 나라 아이슬란드가 이렇게 고통당하는 세계의 자유 언론의 고향, 언론의 피난처가 되겠다고 나섰다. 일명 ‘저널리스트를 위한 꿈의 법안(Journalist's Dream Package Of Legislation)’, 다른 이름으로 ‘아이슬란드의 현대 미디어 법(Iceland's Modern Media Initiative)’을 의회가 발의해 제정하고 시행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거대기업이나 부자들이 자신들에게 민감한 정보에 대해 법적으로 이를 차단하려는 공격적인 시도가 날로 늘고 있는 상황에서 비리를 파헤치고 비판하는 탐사보도 활동으로 피소(被訴)의 위험에 처하는 언론매체나 언론인들에게 강력한 보호의 장소를 제공한다는 것이 입법 취지다. 하지만 뜻은 좋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인다. 규모가 작고 몸이 가벼운 독립 뉴스 매체, 폭로 전문 온라인 업체, 에로 웹사이트 등은 이런 피난처를 찾아갈 수도 있겠지만 탄압이 있다고 겁먹고 아이슬란드까지 달아날 제대로 된 언론사는 있을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언론은 그 특성상 몸을 피할 물리적 공간이 없다. 조세 피난처처럼 달아날 곳이 없다. 있다면 오직 독자들의 신뢰하는 마음이 유일한 안식처요 피난처일 뿐이다. 그래서 독자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언론이 되려는 노력,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권력 분립이 있는 민주국가의 그런 언론은 아무도 함부로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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