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 직역하면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천고마비는 넉넉한 가을을 대변하는 긍정의 표현으로 불러지고 있다.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중 흉노(匈奴)의 노략질에 대한 중국변방 백성들의 삶의 애환과 고통과 절박한 심정을 상징하는 가슴 아픈 사연을 담은 이야기로부터 비롯됐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오곡백과가 풍성한 가을이 돌아오면 모두들 마음이 풍요로워진다’는 반전된 의미로 의역돼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어찌됐든 문득 찾아온 초가을의 날씨는 그야말로 천고마비의 그윽한 맛을 느끼기에 제격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이 천고마비는 마냥 갈 것만 같던 폭염과 열대야를 예고도 없이 찾아와 몰아내 준 고마운 자연의 섭리며, 나아가 대자연의 섭리는 그 무엇으로도 어찌할 수 없다는 진리와 이치를 우리에게 깨닫게 한다. 그래서 선선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이 가을의 문턱이 어느 때보다 더 귀하게 느껴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할지라도 가을의 정취에 그저 도취돼 있기엔 우리의 생각이 너무 사치스러운 것은 아닐까. 이른 봄 논밭에 나가 씨를 뿌린 농부의 심정을 생각해 볼 때 말이다. 이른 봄 이른 아침 밭에 나가 씨를 뿌리는 농부는 씨를 뿌려 익은 곡식이 온 들녘에 넘실거릴 추수 때를 생각하며 노심초사 열심히 한 해 동안 비지땀을 흘려가며 농사를 지었을 것이다. 그 노고를 생각할 때, 우리는 마냥 가을의 정취와 넉넉함에 도취돼 있을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지즉위진간(知則爲眞看)’이란 말처럼, 누구나 자연의 이치를 알 때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눈과 귀가 열리고 지혜도 생길 것이다. 이 세상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이처럼 농부를 통해 있어지는 농사의 법을 모르고서는 아무 것도 깨달을 수 없으니, 세상의 농사법이 곧 세상이치의 기본이며 근본이 되고, 나아가 하늘의 이치를 깨닫는 첩경이 된다.

콩 씨를 심으면 반드시 콩이 난다는 사실과 씨를 뿌렸으니 자라는 기간이 필요하고 나아가 거두는 일이 있게 되니 곧 진리요 이치다. 뿌린 대로 거두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진리 말이다.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 그 자체며 명철(明哲)을 가지신 창조주의 섭리, 나아가 자연의 섭리가 바로 이 농사의 이치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만고불변의 이치는 다시 정리하자면 바로 이런 것이다. 지난여름 마냥 갈 것만 같던 폭염과 열대야도 자연의 섭리를 어찌하지 못하고 이 가을의 서늘함에 밀려나고 말았다는 사실이며, 농부가 씨를 뿌렸으니 자라는 때가 있고 오늘날 천고마비의 좋은 때 곧 거두는 때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자연의 섭리와 이치를 좇아 우리가 참으로 깨달아야 하는 것은 또 다른 데 있다. 세상의 추수를 넘어 창조주께서 계획하신 모든 일들도 바로 ‘천농(天農)’이란 말이 있듯이, 시작의 씨를 뿌리고 오랜 세월 역사해 오다가 이제 때가 되어 거두고 끝을 내는 하늘의 추수 곧 천고마비의 계절이 부지불식간에 우리 곁에 찾아왔다는 기막힌 사실이며, 이는 곧 시작한 것이 있으니 때가 되어 끝을 낸다는 의미며, 이것이 바로 만고불변의 진리(眞理)다.

이처럼 오늘날 이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고 어느 한 구석 성한 곳 없고 희망조차 없어 보이지만, 이미 폭염과 열대야를 예고 없이 밀어낸 대자연의 섭리같이, 우리 앞에는 약속된 좋은 때 곧 호시절이 홀연히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이때를 분별해 낡아 쇠하여 없어져 가는 구시대를 잡지 말고, 홀연히 우리 곁에 다가온 희망의 새 시대에 참여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돼야만 한다.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해 온 창조주는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또 종교의 진리를 통해서도 만세 전부터 쉬지 않고 이 한 가지를 알려 왔으니 곧 이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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