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권 회장. (사진: 박완희 인턴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원불교문인협회 덕산 김덕권 명예회장

“상생하려면 나를 낮추고
상대방의 입장 존중해야”

“구시대 종교는 희망 없어
새 종교·교리·교인 나와야”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지구촌은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분쟁 등으로 골병이 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분쟁 원인의 80% 이상이 종교로 인한 갈등이라고 보고 있다. 종교 간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지구촌 전쟁과 분쟁 해결의 근본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이에 종교 간 평화와 상생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다. 더욱이 다종교 다문화가 정착한 우리사회에서는 이러한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게 사실이다.

본지는 이러한 지구촌 ‘상생’에 대한 조언을 듣고자 ‘덕화만발’ 종교칼럼을 연재하는 원불교 원로인 원불교문인협회 김덕권(76) 명예회장을 만났다. 김 회장은 원불교 원로로서 덕이 가득한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거의 매일 칼럼을 쓰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원불교가 종교인으로서 이웃종단과 상생하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원불교는 원융회통(圓融會通)하는 종교다. 원융회통은 화합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화합은 중도·중용·중화의 도를 실천해야 비로소 싹이 튼다. 중도가 도이다. 우리가 중도의 도를 실천하기 해서는 우선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어렵다. 그러므로 이웃 종단과 상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나를 낮추고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해 주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따라서 원불교인은 조금 못나고, 무조건 베풀며, 마음에서 우러나는 헌신과 봉사를 통해 원융회통의 윤활유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KCRP와 URI 등 종교연합단체들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는 이웃종교 간 화합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상생하는 계기가 됐다고 보는가.

종교간 화합운동이 진행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성숙단계는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아직도 일부 종교에서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성격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이 작은 몸짓들이 세상에 경종을 울리고 실제로 종교간 상생상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종교의 미래는 암담하다고 본다. 실제로 KCRP나 ACRP, 뉴욕의 UR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종교연합은 요원한 것 같다. 현실은 그런 기관이 명맥을 유지 하는 것은 원불교를 비롯한 몇몇 종단이 이끌어가는 형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기득권을 가진 큰 종단의 합력이 절실한 것이다.

- 개선이 됐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부분이 있다면.

문제는 종교가 이 사회의 소금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종교 자체가 썩어가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부 유명 종교인들이 범법자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여간 개탄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제는 새로운 종교가 나와야 합니다. 구시대의 종교로서는 더 이상 이 사회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 시대에 걸 맞는 새 종교, 새로운 교리, 새로운 종교인들이 나타날 때도 되지 않았을까.

- 일각에서는 ‘상생’을 외치고는 있지만 사실상 ‘편협’ 속 상생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소수 종교는 외면한 채 기득권 종교들만 모여서 상생을 외친다는 비판이다.

‘편협 속 상생?’ 말도 안 되는 행태다. 그런 기득권을 유지한 채 울타리를 높이 치고 있는 한 그건 결코 ‘상생’이 아니다. 그들만의 리그에 불과하다. 종교는 벽이 있으면 안 된다. 활짝 문호를 개방하고 종교가 하나의 도리, 하나의 진리임을 인정해야 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상대방이 틀리다고 고집해 그들만의 리그를 진행하면 그런 종교는 머지않아 이 사회에서 소멸할 것이다.

- 일부 종교에서는 이슬람 등 특정 종교에 대해서는 공공연하게 차별을 정당화하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결국 하나의 진리를 믿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모두 한 포태에서 생겨난 한 동기간이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주의, 사상이 모두 세상을 이롭게 하는 하나의 사업이다. 그런데 이슬람이라고 차별하고 피부색깔이 다르고 또 문화가 다르다고 차별을 한 데서야 어디 그것을 종교라 말할 수 있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종교나 신흥종교를 차별한다는 것은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왜 신흥종교가 생겨나는 것인가. 이제는 더 이상 구시대의 종교로는 이 사회와 도탄에 빠져있는 수많은 중생들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따라서 그들이 신흥종교를 백안시 하거나 차별하려면, 스스로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흥종교가 나타나는 것은 자신들의 내부요인으로 비롯된 것이 아닐까.

- 종교 차별에 앞장서는 정치인과 공무원 등도 있다.

정치인이나 공무원은 공인(公人)이다. 이 사회의 공복(公僕)이라고도 한다. 그런 국민의 심부름꾼이 감히 종교차별을 하다니. 차별이 있다면 시정해야 할 그들이 그런 행태를 보인다면 결코 주인인 국민들을 모시는 자세는 아닐 것이다.

- 종교인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종교의 순기능이 퇴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종교계(지도자들)가 종교인의 신뢰와 역할을 회복하기 위해 할 일은.

종교인의 신뢰와 역할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딱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교조정신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이나 석가모니나 마호메트, 소태산(少太山)같은 성현이 결코 지금의 물신주의(物神主義)나 부정부패를 하라고 가르치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이것을 바로 잡는 길은 각 종교를 혁신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 성현들의 본의(本意)를 구현하는 새로운 종교가 출현하는 것이다.

- 기타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종교가 세계의 평화를 이끌면 좋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세상의 모든 전쟁과 분란은 다 종교로 인해 발생하고 있다. 그 전쟁과 분쟁을 종식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그것을 ‘삼동윤리(三同倫理)’라고 한다. 그 세 가지 윤리는 ‘동원도리(同源道理)’ ‘동기연계(同氣連繫)’ ‘동척사업(同拓事業)’으로 세상의 모든 종교는 한 가지 진리를 신봉하고, 세상의 모든 인종은 같은 동기간이며, 세상의 모든 사업은 모두 세상을 한 가지로 발전시켜가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종교들이 이 삼동윤리를 실천하면 그곳이 바로 ‘맑고 밝고 훈훈한 덕화만발의 세상’으로 바로 극락이요, 천국이며, 낙원세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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