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공장에서 생산 이어가고 있지만
협력사 끊기고 매달 수천만원 적자
업체 “원·부자재값 100% 지원해야”
“남북 신뢰 우선 구축돼야”

[천지일보=박수란 기자] “북측 직원들과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는데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나온 게 너무 안타깝고 속상합니다. 갑작스럽게 개성공단 폐쇄를 통보받은 바람에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고 떠나와야 했죠.”

개성공단에 입주한 지 올해로 8년째 되는 컴베이스(완구생산업체)의 박남서 대표의 말에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지난 2월 정부로부터 ‘개성공단 가동 전면중단’ 통보를 받은 박 대표는 빈손으로 공단을 나왔다. 완구업체는 장비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장비만 부랴부랴 챙겼는데 북측 세관이 이마저도 가져갈 수 없다고 해서 놔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북핵 문제로 개성공단이 문을 닫은 지 6개월이 넘었다. 당시 거의 맨몸으로 쫓겨나다시피 했던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임시로 마련한 공장에서 생산을 이어가고 있지만 날로 빚만 쌓여가고 있는 실정이다.

◆턱없이 부족한 피해 보상액

▲ 박남서 컴베이스 대표 ⓒ천지일보(뉴스천지)

지난 23일 기자가 찾은 컴베이스의 공장 안은 뜨거운 공기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직원들은 35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에어컨 없이 선풍기 바람에 의존해 완구제품을 조립하고 있었다. 가까스로 마련한 대체공장에서 생산이 이뤄지다보니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추지 못한 탓이다.

일용직을 고용해 그나마 남아있는 거래업체 2곳에 납품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완구제품의 하루 생산량이 1000개, 거래처도 10곳에 달했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 생산량 40개 남짓에, 거래업체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정부는 북한이 핵개발을 멈추지 않는 한 개성공단 폐쇄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언제쯤 개성공단이 다시 문을 열 수 있을지도 모르는 막막한 상황이다. 현재 박 대표가 운영하는 업체는 다달이 3000만원가량의 적자를 내고 있다.

정부가 피해 보상을 하겠다고 했지만,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에겐 턱없이 모자라다. 박 대표는 개성공단 폐쇄로 인한 피해액의 절반 수준만 보상해줄 수 있다는 정부의 통보를 받았다. 정부는 개성공단 기업들이 신고한 피해금액 9446억원 중 82%만 인정하고 추산 피해액을 7779억원으로 발표한 바 있다. 개성공단 내에 두고 온 유동자산에 대한 것으로 확인된 피해액의 70%만 지급한다는 것.

박 대표는 “정부가 애초부터 피해액 중에서 80%만 인정한 상황에서 여기서 또 70%만 피해보상을 하겠다고 한다”면서 “그러면 대부분 업체들은 실질적으로 50% 정도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그런데도 정부는 마치 90%까지 피해보상을 해주는 것처럼 발표했고, 이런 정부 말만 듣고 주위에선 90%까지 보상받으면 괜찮은 것 아니냐고 하는데 정부에 사기 당하는 것 같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 이은행 일성레포츠 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아웃도어를 만드는 일성레포츠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지난 2007년 개성공단에 입주한 일성레포츠는 60여개의 협력업체에서 원·부자재를 받아서 등산복 등을 만드는데 이들 업체에 원·부자재 값을 지불하지 못하고 있다.

일성레포츠의 이은행 회장은 “정부가 한 달만 시간을 줬어도 이렇게까지 피해가 막대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섬유업체는 2~3월까지 성수기라 이때 대부분 주문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40억원에 달하는 원·부자재 값을 거래처에 다 주지 못하고 있다 보니, 거래처와의 사이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 게다가 개성공단 폐쇄가 장기화될 경우 중랑구에 있는 본사 건물마저 내년 5월께 경매로 넘어갈 처지에 놓였다.

이 회장은 “정부가 실제 지원을 피해 확인 금액의 70%로 정하고 22억원으로 상한선을 정해 보전하기로 했는데 이 기준이 어떻게 나온 건지 알 수 없다”면서 “적어도 협력사에 지급할 원·부자재 값은 100% 지원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 같은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가뜩이나 은행 대출에 이자까지 내고 있는 상황에서 원·부자재 값을 고스란히 빚으로 떠안게 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이러한 어려움을 정부에 호소하기 위해 개성공단 기업협의회를 중심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정부 보상이 사실 부풀려진 것이 많아 실질적인 피해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국회 앞에서 1인 시위와 기자회견 등을 벌이며 정부 지원을 호소하고 있으나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일성레포츠(회장 이은행)의 사무실에 직원들이 모두 떠나고 주인을 잃은 의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위). 임시로 마련된 경기도 시흥시 소재의 완구생산업체인 컴베이스(대표 박남서)에서 직원들이 납품기일을 맞추기위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아래). ⓒ천지일보(뉴스천지)

◆“남북 신뢰 우선돼야”

박남서 대표는 개성공단 폐쇄 실효성 여부를 우려했다. 박 대표는 “정부는 지금 북한에 대해 비굴함을 강요하는 것 같다. 경제지원을 끊을 테니 너희가 먹고 살기 위해 고개를 숙이라고 하고 있다. 핵개발을 중단해야 하는 건 맞지만,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지 의문이고, 실효성도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은행 회장은 개성공단이 향후 문을 연다 해도 그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또 다시 입주하려는 기업들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고 했다. 그는 “남북 간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현재 남북 관계 상태로는 개성공단이 재개된다 해도 업체들은 불안할 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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