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합의, 피해자 의견 배제
한마디 논의 없이 합의 통보”
“보상·배상 아닌 위로금은
정부가 할머니 팔아먹는 행위”
[천지일보=김민아 기자] “정말 답답해 죽겠다. 건강도 신경을 너무 써서 자꾸 안 좋아진다. 왼쪽 눈은 안 보이고 오른쪽 눈도 잘 안 보인다. 이렇게 할머니들 괴롭히려면 차라리 정부가 이 일(일본군 ‘위안부’ 문제)서 손 떼야 한다. 우리는 일본 정부가 우리 앞에 사죄하기 전에는 돈 받을 수 없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90) 할머니는 26일 서울 마포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이 제대로 사과하지 않은 상황에서 배상도 보상도 아닌 위로금을 받을 수 없다”며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후속조치에 대해 거듭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전날 정부는 12.28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른 후속조치로 일본에서 거출할 10억엔으로 생존자에게 1억원, 사망자 유가족에게는 20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먼저 김 할머니는 12.28 합의의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배제된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드러난 것도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한 민간단체와 피해자들의 노력에서부터 시작했고, 25년이라는 세월동안 문제해결을 위해 운동을 해 온 것도 피해자들과 민간단체인데 정부가 말 한 마디 논의 없이 합의 내용을 통보했다는 게 김 할머니의 지적이다.
김 할머니는 “우리는 아직 해방이 안 됐다. 진짜 말도 한 마디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만 앓다가 민간단체서 일본 잘못한 거 밝혀 할머니들 한 풀어준다고 해서 전 세계 다니며 운동해 왔는데…”라며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다.
김 할머니는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법적배상이 아니고서는 절대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다. 김 할머니는 “우리는 위로금을 받기 위해 이때까지 싸운 게 아니다. 남자들은 남자대로 끌려가고 여자들은 여자대로 끌려가 희생을 당했지만, 일본은 조금도 미안하다는 말이 없다”며 “아직까지도 ‘민간이 했다’ ‘자유 의지로 한 것이다’라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언성을 높였다.
이어 “한 사람만 남더라도 일본 정부가 할머니들에게 ‘늦어서 미안합니다. 우리들이 한 짓이니까 용서해주십시오’하고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법적으로 배상해야지 위로금이라고 해서 받는 것은 한국 정부가 할머니를 팔아먹는 거 밖에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40명 중 29명이 화해·치유재단 설립에 찬성하고 배상금이 많지는 않지만 받아들이겠다고 했다는 김태현 화해·치유 재단 이사장의 인터뷰 내용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할머니는 “다 거짓말이다. 할머니들은 끄떡도 안 하고 있다. 나눔의 집 가봐라. 다 안 된다고 한다. 한심스럽다”며 “정부에선 지방으로 몸도 성치 않은 할머니들 만나고 다니면서 그 가족들에게 ‘돌아가실 날 얼마 안 남았는데 얼마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협조해 달라고 하고 다닌다”고 말했다.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에 대해서는 ‘절대 불가’ 입장을 내놨다. 김 할머니는 “우리는 평화를 원해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 소녀상을 세웠다”며 “소녀상은 과거에 이런 비극이 있었다는 것을 후세에게 알리려고 국민이 한푼한푼 모아 세운 것이다. 그거를 가지고 철거해라 마라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태현 이사장은 이날 한 라디오방송 인터뷰를 통해 10억엔의 배경에 대해 배상금은 아니지만, 일본 정부가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와 반성을 하는 의미로 치유 보상을 낸 것이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