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개최지가 어디이든 올림픽의 개막과 폐회를 알리는 행사는 항상 지상 최대의 쇼로서 가장 멋진 볼거리를 지구촌에 제공한다. 2016년 삼바(samba) 축제의 나라 브라질에서 열린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의 혼을 빼앗아갈 만한 정열과 원색의 호화 축제였다. 그 바람에 숲 모기에 물림으로써 소두증(小頭症)이 유발되는 지카 바이러스(Zika Virus) 감염에 대한 공포도 잠시 잊혀지는 듯했다. 그 공포는 세계적으로 확산됐었다. 실제로 몇몇 나라들은 치안 부재에 브라질 모기에 물리는 것이 두려워 올림픽에 선수단을 보내야 하느냐 마느냐로 주춤거렸던 것이 사실이다. 어떻든 올림픽이 제공하는 다양한 콘텐츠(contents) 중에서 누구라도 유일하게 느긋한 마음으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은 이 개막식과 폐막식 쇼뿐이다.

메달을 놓고 경쟁하는 경기는 편안한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나라 선수가 나가 싸우는 경기를 보기 위해서는 일진일퇴할 때의 조바심과 긴장, 스트레스를 견딜 만한 강심장이 우선 필요하다. 이럴 때 우리 특유의 응원단인 ‘붉은 악마’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관전자들을 군중심리에 매몰되게 함으로써 바보상자를 폐쇄공간에 놓고 혼자 응원할 때 일으킬 수도 있는 심장마비를 확실히 막아주는 강심장을 갖게 한다.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붉은 악마’의 정신적 밑바탕은 사람의 본성에 가까운 민족감정과 애국심인 것이 뚜렷하다고 말해져왔다. 우리의 그것이 특이한 것은 인위적으로 동원된 조직이 아니고 자연발생적으로 모이는 군중이면서도 그 숫자가 얼마든 이내 훈련 받은 수준 높은 응원단처럼 질서정연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잘 결속된 조직체와 같이 되고 만다는 점이다. 흔히 유럽이나 남미(南美)에서 볼 수 있는 ‘난동 관중’인 ‘훌리건(hooligan)’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렇지만 훌리건의 난동 현상을 포함해 올림픽에서와 같이 스포츠가 국가 간 싸움이 될 때의 뜨거운 응원전의 열기는 ‘붉은 악마’가 보여주는 민족적, 국가적 정체성을 그 밑바탕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예외가 없다. 이는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DNA(유전인자)로 내림하는 태생적이고 뿌리 깊은 나름대로의 민족주의 및 국가주의 정신의 지배를 잠재적으로 또는 노골적으로 받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한 증거가 되고도 남는다. 이런 점에서 정열의 나라 브라질이 축구에서 독일에 패배했더라면 폭동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관측은 절대로 허황한 것이 아니다. 진짜 그들 국민의 자존심이 걸린 국기(國技)와도 같은 축구에서 그들이 패배했더라면 평소 질척거리는 정치와 경제로 쌓인 불만이 거대한 풍선처럼 부풀어 얼마든지 폭동으로 폭발해버렸을 수도 있었다. 이래서 현실의 스포츠 운용은 스포츠 나름의 순수한 이상(理想)을 추구하고 그것을 달성하는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정치의 수단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미국 탁구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해 미-중 수교의 단초를 제공한 1971년 4월의 미중 탁구 경기, 이른바 핑퐁외교(Ping-pong diplomacy)가 그것을 단적으로 웅변한다. 독재국가일수록 스포츠 육성에 국가적 역점을 두어 국민의 정치 불만과 관심을 분산시키려 애쓰는 것도 그 같은 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더구나 올림픽은 출전자의 명예와 함께 국가의 명예가 걸린 지상(地上) 최고, 최상위의 스포츠 경연 무대다. 그렇기에 출전자는 가슴을 짓누르는 중압감과 크나큰 책임감을 갖고 그야말로 체력과 정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최선의 노력을 쏟아 붓기 마련이다. 그런 그가 평소에 갈고 닦은 발군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할 뿐 아니라 운도 따라주어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승리자가 되는 경우 그를 응원한 국민 역시 그가 느끼는 것과 추호도 다를 것이 없는 환희를 맛보게 된다. 출전자도 이 나라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세계의 뭇 관중 앞에서 애국가를 연주하게 하고 국기를 게양하게 한 바로 그 영광스런 애국가와 태극기의 나라인 이 나라의 국민 된 것에 대해 국민이 느끼는 자부심 역시 마찬가지다. 올림픽 무대에서의 선수들의 활약이 이렇게 기대되던 승리의 시나리오대로만 맞아 떨어져준다면 그들을 보내놓고 심장이 터질 듯 마음 졸이며 응원한 국민들로서도 비로소 다시 평정심을 회복하고 행복감과 자부심을 느끼는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되는 셈이 된다. 아니라면 한동안은 우울할 수밖에 없다. 한편 이런 멋진 선물을 국민에게 안긴 출전자들에게 국민들이 그들이 개척한 명예에 맞는 응당한 포상과 보상으로 되갚는 것은 자연스럽고 마땅하다. 그들을 두고두고 올림픽 승리자의 아이콘(icon)으로, 국민적인 영웅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도 그러하다. 

올림픽에서의 메달 획득, 특히 금메달을 따는 것은 물론 더 바랄 것 없는 쾌거다. 하지만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서도 아쉽게 메달은 놓쳤지만 인간의 가치를 드높인 비(非)메달의 쾌거 역시 그것 못지않게 국민에게 커다란 감동을 안긴다. 그것이 국위를 선양하는 측면에서도 매 한가지다. 리듬체조의 요정 손연재가 그렇지 않은가. 그는 4위로 메달권을 벗어났지만 인간의 정신과 품격에서는 금메달을 뛰어넘었다.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들을 무색하게 할 정도였다. 그는 말했다. “나는 쉬지 않고 노력했고 그만큼 성장했다. 100점이 있다면 나 스스로에게 100점을 주고 싶다.” 이 말이 감동을 주는 것은 누가 봐도 그것이 위선이 아니라 진솔하게 고된 훈련을 통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인간 내면의 성숙을 이루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국민이 전폭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의 경기는 사력을 다한 것이었고 당당하며 아름다웠다. 쇠붙이로 만든 메달로는 우리의 성적이 금메달 9개, 은메달 3개, 동메달 9개로 세계 8위에 그쳤지만 손연재와 같은 선수들이 거둔 보이지 않는 정신적 성과까지를 보탠다면 우리는 우뚝한 승리국인 것이 분명하다. 한편으로 지금까지 높은 성가를 구가하던 마라톤이 자멸한 것은 배가 부르고 기름져 몸과 정신이 모두 게을러진 우리 사회 물정(物情)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새삼스런 걱정으로 마음에 다가오는 것이 개운치가 않다. 소망하기로는 올림픽에는 손연재도 있어야 하지만 박인비도 많이 나와야 한다. 박인비는 그가 18번 홀 시상식에서 들은 애국가가 여태까지 들은 음악 중 최고의 음악이었다고 말했다지. 국민이 듣기에 박인비의 그 소리야말로 최고로 아름다운 소리였다. 올림픽이 있는 한 그런 소리를 국민에게 전하는 선수들이 자꾸자꾸 많아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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