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그렇다. 영국 군주제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은 없었다. 미국이 홀로 서는 것,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공화제 국가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었으며 그것이 ‘상식(common sense)’이었다. 어설픈 타협이나 막연한 기대는 금물이었다. 이런 점에서 ‘상식’이야말로 ‘양심’의 소리였으며 ‘혁명’의 외침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토마스 페인(T.Paine)의 ‘상식’은 당시의 치열하고 절절했던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상식, 진화를 넘어 혁명을 꿈꾸다

최근의 우리 정세를 보면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상식’이라는 화두에 집착하게 된다. ‘상식’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며, 기존의 ‘상식’은 왜 이토록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무차별적으로 짓밟히거나 뒤집히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가는 것이 바람직한 길이며, 낡고 병든 기존 질서를 어떻게 끝내야 하는 것일까. 쉬 출구를 찾지 못한 채 고민하다가 무려 240여년 전, ‘프랑스 혁명’ 직전에 세상에 나온 T.페인의 ‘상식’을 다시 꺼내본 것이다. 그 때도 절망에서 희망을 찾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상식’은 새로운 희망의 언어였으며 동시에 혁명의 언어였음을 느끼게 된다.

필자는 지난해 본지에 실은 첫 칼럼에서 ‘상식의 붕괴’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당시 청와대 문건 파동으로 국정이 어수선 할 때 핵심 권력에 의해 상식마저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비평했던 내용이다. 당시 필자는 “권력으로 상식마저 지배하려 들 때 그 사회가 어떻게 되는지 파시즘의 역사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상식이 무너지면 광기가 그 자리를 채우기 마련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 년 반이나 훌쩍 지난 지금의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상식의 진화는 말 그대로 어설픈 타협이거나 막연한 기대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 T.페인을 언급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상식의 ‘진화’가 아니라 상식의 ‘이동’을 얘기했어야 했으며, 낡은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것을 택하는 ‘혁명’을 말하는 것이 옳았다. 물론 상식의 이동은 ‘새로운’ 정치세력을 창출하는 것이며, 그들에 의해 창출되는 새로운 시대는 ‘선거 혁명’을 통해 그 전환점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마침 16개월쯤 후면 차기 대선이 있다. 그 즈음 ‘상식’도 새롭게 이동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거취 문제가 국정의 키워드가 돼 버렸다. 간단한 문제가 간단치 않은 문제로 커져버렸다. 낡은 것을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무리수가 나오고 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온갖 몰상식한 것들이 넘쳐난다. 기존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언행들이 횡행하고 있다. 상식을 갖고서는 제대로 된 국민 노릇 하기도 힘든 세상이 돼버렸다. 언제까지 이런 흐름이 지속될 수 있을지가 참으로 궁금하다. 상식이 뒤집히고 이성이 마비되는 사회, T.페인이 살아 있었다면 지금쯤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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