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의 문화 창] 여름을 함께한 부채를 접더라도
[전경우의 문화 창] 여름을 함께한 부채를 접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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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중국 한(漢)나라 황제 효성제(孝成帝)에게 반첩여라는 후궁이 있었다. 그녀는 조비연이라는 궁녀와 황제의 총애를 다퉜다. 그런데 황제의 사랑이 조비연에게로 기울고, 조비연이 반첩여가 황제를 중상모략 하였다고 무고까지 했다. 그 때문에 반첩여는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다. 혐의가 풀려 옥살이에서는 벗어났지만 황제의 총애는 옛일이 되고 말았다. 하여 그녀는 황제의 사랑을 받던 시절을 생각하여 이런 시를 지었다. 

‘새로 자른 제(齊)나라의 고운 비단/ 서리와 눈 같이 선명하고 깨끗하네/ 마름질해 합환선을 만들었는데/ 고르게 둥근 것이 보름달 같네/ 임의 품과 소매 속을 드나들며/ 움직일 때마다 잔잔한 바람 일으켰지/ 항상 두려운 것은 가을철 되면/ 서늘한 바람이 더위를 앗아가듯/ 대나무 상자 안에 버려져/ 깊은 정 중도에 꺾일까 함이네’

반첩여는 자신의 처지를, 여름이 가면 쓸모가 없어지는 가을 부채, 추선(秋扇)에 비유했다. 아 옛날이여, 하고 시를 짓고 노래를 불러 보았자 다 부질없는 짓. 추선(秋扇)은, 토끼 사냥을 끝내고 삶아 먹히는 사냥개 신세를 뜻하는 토사구팽(兎死狗烹)과 함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비정한 세상의 이치를 빗대는 말로 많이 쓰인다.

부채 하면, ‘삼국지’의 스타 제갈공명도 빼놓을 수 없다. 유비가 세 번이나 초막집을 찾아 부탁을 하고서야 신하 되기를 승낙했다는 삼고초려(三顧草廬) 일화 못지않게 그가 늘 들고 다닌 부채도 유명하다. 그는 평상시는 물론 전쟁터를 나갈 때에도 화려한 깃털 부채를 반드시 챙겨 들고 나갔다. 

제갈공명이 부채를 들고 다닌 것은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식히려는 게 아니었다. 부채로 얼굴을 가려 표정을 감추려 했던 것이다. 상대와 대화를 나눌 때 표정이 드러나면 협상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전쟁터에 나가서 겁에 질리거나 당황한 표정을 짓게 되면 큰일이었다. 전쟁터에서 사령관이 일희일비하는 모습은 치명적일 수 있다. 천재 지략가, 대담한 전략 전술가이긴 했지만 그 역시 사람인지라 희로애락의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제갈공명의 깃털 부채는 그의 아내 황씨 아이디어였다. 기록에 따르면 황씨는 몹시 못생긴 여자였다. 제갈공명은 결혼 첫날 밤 기겁을 하고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가만 보니 총명하고 지혜로운 여자였고, 그래 못 이긴 척 함께 살았다. 그런 황씨가 남편에게 깃털 부채를 주면서 표정 관리를 잘 하라고 조언을 했다. 덕분에 제갈공명은 승상의 자리에 오르며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우리의 골프 여제 박인비는 제갈공명보다 한 수 위다. 그녀는 깃털 부채 없이도 완벽하게 표정관리를 한다. 그녀는 경기 도중 어떤 상황이 와도 표정에 변화가 없다. 한결같은 표정으로 일관한다. 때문에 함께 플레이 하는 선수들이 더 긴장하게 된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도 우승을 확정짓는 마지막 퍼팅 후에야 두 팔을 들어 올리며 비로소 환하게 웃어보였다. 아무 때나 보여주지 않는 ‘귀한’ 웃음이었다.

사상 초유의 무더위가 물러나면 부채도 필요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 계절 곁을 지켜준 고마움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람이라면, 더 말 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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