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매방 선생 1주기 추모공연이 1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서 펼쳐진 가운데 그의 제자들이 승무를 선보이고 있다. (제공: 우봉이매방춤보존회)

고인에 대한 존경·그리움 담아
제자 70여명 다양한 춤 펼쳐
‘하늘의 내린 춤꾼’ 이매방 선생

7세 때 권번학교서 춤에 입문
3·5·7고무 창안하며 이름 떨쳐
승무·살풀이로 무형문화재 지정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지난해 7월 24일 전남 목포시 목포문화예술회관에서 ‘제10회 우봉 이매방 전국무용대회’가 열렸다. 오랜 투병으로 육신이 쇠약해진 우봉(宇峰) 이매방(1927∼2015) 선생의 마음은 이미 무대 위에 있었다. 객석에 앉아 출연자들의 춤을 꼼꼼히 살펴보던 이매방 선생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춤추고 싶다.”

그리고 2주 뒤인 8월 7일 ‘한국 춤의 거목’ 우봉 이매방은 다음 날 할 공연을 앞두고 우리 곁을 떠났다.

80년 넘게 전통춤 외길 인생을 걸어온 이매방 선생 1주기 추모공연이 1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서 펼쳐졌다. ‘거목의 춤을 기억하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공연은 이매방 선생의 제자들이 존경과 그리움의 마음을 전하고자 승무와 살풀이춤을 비롯해 장검무, 승천무, 무당춤, 검무, 입춤, 사풍정감, 삼고무 등을 선보였다.

이날 부인인 김명자 우봉 이매방(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제97호 살풀이춤 전수교육조교) 춤보존회 회장, 김묘선(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전수교육조교) 12체 장고춤보존회 대표, 한혜경 한국전통춤협회 부이사장 등 제자 70여명이 공연했다.

▲ 이매방 선생 1주기 추모공연이 1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서 펼쳐진 가운데 그의 제자들이 살풀이를 선보이고 있다. (제공: 우봉이매방춤보존회)

◆한국적·독자적인 이매방의 살풀이춤

한이 담긴 듯한 피리 연주에 맞춰 무대의 조명이 켜졌다. 흰 저고리를 두른 7명의 춤꾼이 가벼워 보이는 하얀 천을 들고 살풀이춤을 춘다. 한 동작, 한 동작이 정갈하면서도 환상적이다. 느리게 거닐다가 천을 오른팔에서 왼팔로 옮긴다. 때로는 하늘로 천을 던져서 떨어지는데 그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떨어뜨린 천을 두 손으로 공손히 들어 올리자 관객들은 눈물을 훔쳤다. 장단과 조명이 바뀌고 춤꾼들이 가벼운 듯 사뿐사뿐 춤을 춘다. 이 춤은 이매방의 살풀이춤이다. 이렇듯 그는 갔지만 그의 춤은 우리에게 남았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인 살풀이춤은 우리나라 민속춤을 대표하는 춤이다. 죽은 이가 가진 살, 즉 액(厄)을 푼다는 뜻을 가진 민속무용 살풀이춤은 한과 신명을 동시에 지닌 신비한 느낌을 준다.

남도 계통의 춤으로 전형적인 기방예술로 굿판에서 무당이 추던 춤에서 기원 됐다고 전해진다. 무당들이 추던 살풀이춤은 기방으로 전해져 기생들이 추게 된다. 현재 살풀이춤은 1930년대 한국 민속춤의 대부로 불리던 한성준 선생이 무대에 올릴 수 있게 다듬은 춤이다.

살풀이춤의 기능보유자 이매방 선생의 살풀이춤은 정적미의 단아한 멋과 함께 정(精), 한(恨)이 서린 비장미(悲壯美)가 몸에 스며 있는 특징을 가졌다. 천을 떨어뜨리는 동작은 불운의 살을, 다시 주워드는 동작은 기쁨과 행운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을 방문한 프랑스 아비뇽축제의 관계자는 이매방 선생의 살풀이춤을 보고 “사람이 춤을 저렇게 잘 출 수 있느냐?”라며 큰 감명을 받은 일이 있다. 그만큼 외국인들에게 살풀이춤은 한국적이고 독자적인 춤으로 평가받고 있다.

▲ 이매방 선생 1주기 추모공연이 1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서 펼쳐진 가운데 김명자 우봉 이매방(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제97호 살풀이춤 전수교육조교) 춤보존회 회장 살풀이를 추고 있다. (제공: 우봉이매방춤보존회)

◆‘하늘의 내린 춤꾼’ 이매방

1927년 전남 목포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이매방 선생은 옆집에 살던 목포 권번장의 권유로 7세 때 권번학교에 들어가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목포 북교초등학교(북교초등학교)와 목포공고를 다니던 시절 이대조 선생으로부터 승무, 박용구 선생으로부터 승무북, 이창조 선생으로부터 검무를 사사해 춤의 바탕을 닦았다. 국민학교 때 5년여간 중국에서 살면서 중국의 전설적인 무용가 매난방으로부터 칼춤과 등불춤을 배우기도 했다.

목포공고를 졸업한 후에는 군산 영화동, 서울 종로구 창신동, 아현동 등에 무용 연구소를 개관하고 1940년대부터 전승 활동을 시작해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73년 전통춤 학원인 이매방무용연구소를 차리고 춤을 가르쳤다. 1980년대에는 다시 서울로 올라와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 선생은 1960년대 3고무, 5고무, 7고무 등을 창안해 대중에게 인기를 받으면서 이름을 알렸다. 이후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1987년 승무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1990년 살풀이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로 지정받아 ‘하늘의 내린 춤꾼’으로 불렸다.

전통춤을 고집한 이매방 선생은 생전 입춤, 검무 등 19종류의 춤을 선보였다. 또 일본과 미국, 프랑스 등에서 공연하며 한국 춤의 우수성을 알렸다.

▲ 우봉 이매방 선생. (제공: 우봉이매방춤보존회)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