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도 강조했듯이 경제적으로 ‘위기’ 국면이다. 국민의 체감경기는 바닥권으로 내려앉은 지 오래다. 동네 골목마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눈물로 가득하다. 하루 종일 뛰어다녀도 먹고 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다. 이를 일부의 목소리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세계가 부러워한다”는 허상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지난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로 한 단계 상향 조정하면서 역대 가장 높은 신용등급을 나타냈다. 물론 반길 일이지만 국민의 실생활과는 크게 관계가 없다.

외교와 안보도 ‘위기’ 국면이다. 사드 배치 이후 남북을 최전선으로 해서 세계열강의 대결구조가 더 선명해지고 있다. 남북이 손잡고 동북아 평화공존을 지향했던 비전은 옛 얘기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은 계속될 것이고 한미일의 사드 체제도 더 강화될 것이다. 이에 따라 남북의 무기 경쟁은 무한 경쟁으로 치닫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민생의 큰 고통이 걱정될 따름이다. 게다가 갑자기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의 외교 파트너에서 멀어지는 것도 상처다. 누가 우리를 이렇게 내모는 것인지 원망일 뿐이다.

이럴수록 국민적 총의와 결연한 단합 의지는 매우 중요하다.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가장 먼저 위기 극복에 나섰던 것은 대부분 깨어있는 ‘국민’이었다. 대대손손 한민족의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저력이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국민적 저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나라 안팎의 정세가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명명하는 바람에 온 나라가 다시 소모적인 이념논쟁으로 불붙고 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새누리당은 ‘건국절’을 아예 법제화 하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정부수립 당시 이승만 대통령도 ‘건국’이라고 하지 않았다. 정부수립 직후인 1948년 9월 1일자로 나온 최초의 관보도 ‘대한민국 30년’이라고 적시했다. 논쟁할 가치도 없는 ‘건국절’ 논란을 촉발시키면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이념 대결’로 몰아가는 정부와 여당의 속내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렇게 가는 것이 정부 여당에 유리한 정세라고 보는 것일까.

혹자들은 내년 대선용 포석이 아니겠냐는 말까지 하고 있다. 정권재창출의 가능성이 낮은 상태에서 여론을 다시 이념 대결로 몰아가면 이탈된 보수층을 재결집 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단합을 외치는 정부 여당이 그런 식으로 대선정국의 프레임을 잡는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그렇게 해서는 대선에서 유리하지도 않을 뿐더러 국민과 역사가 용서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 개운치는 않다. 건국절과 국정교과서, 여기에 사드 문제까지 가세해서 뭔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물론 허상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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