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로마의 네로 황제는 폭군이었다.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한 후 서기 67년 네로는 고대 올림픽 전차 경기에 출전했다. 5천명이 넘는 로마 시민들이 동원돼 응원했지만, 경기 도중 전차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심판과 신하들이 황급히 달려가 전차에 태워 경기를 진행했으나 꼴찌였다. 그런데도 심판은 네로를 우승자라고 선언했다. 네로가 죽고 나서 이 대회는 아예 없었던 걸로 되었고, 1200년 동안 293회가 열린 고대 올림픽 중 유일하게 무효처리 된 대회로 역사에 남게 됐다. 

로마 시민들은 빵과 서커스를 원했다. 황제는 시민들의 안전과 식량, 그리고 쾌락을 책임져야 했다. 황제는 원형극장과 전차 경주, 검투사 경기, 모의 해전 같은 공연과 오락거리를 통해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전차와 검투사 경기는 가장 인기 높은 스포츠였다. 검투사 경기는 한 쪽이 죽거나 불구가 돼야 끝이 났고, 하루에 5천 마리 이상의 맹수가 죽어 나갔다. 잔인하고 광폭했다. 그럼에도 검투사는 최고의 인기 스타였고, 황제가 스스로 검투사를 자처하기도 했다. 전차 경주 선수들은 노예나 죄수들이었다. 우승을 하면 자유와 재물, 명예가 주어졌기에 목숨을 걸고 달렸다. 

스포츠가 정치적으로 이용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나치 독일은 올림픽을 체제를 선전하고 국민들을 통합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 활용했다. 히틀러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 때 최초로 그리스 고대 올림픽 성지에서 성녀(聖女)들이 채화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성화는 3천㎞ 대장정 끝에 베를린 메인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건장한 아리안 청년들이 들고 뛰는 성화가 지나가는 베를린 거리와 메인 스타디움에는 나치의 상징인 대형 하켄그로이츠 깃발들이 내걸렸다. 나치는 이 모든 상황들을 TV 중계와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렸다.

미국과 소련을 정점으로 한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 간의 냉전 시대가 이어지면서 올림픽도 반목과 불신으로 점철됐다.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무대는 양 진영 간의 체제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고, 이념과 종교, 국경을 초월한 평화와 화합이라는 올림픽 정신이 무색해졌다. 우리도 남북한 간의 경기가 열리면 죽을 각오로 맞서 싸웠다.  

1980년대, 시절은 수상했고, 국민들은 불안했다. 당시 정권은 1980년 미스유니버스 대회와 1981년 ‘국풍81’ 등을 통해 의도적으로 축제 분위기를 조성했고, 그해 8월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육상대회인 서울국제주니어오픈육상경기대회가 열렸다. 9월에는 서독 바덴바덴에서 88서울올림픽의 개최가 확정돼 국민들을 들뜨게 만들었다. 야구와 축구 등 프로 리그가 생겨나면서 전국적인 스포츠 붐이 일었다. 프로야구 야간경기가 열리고 컬러 TV로 중계됐다. 그 전 박정희 정권 때는 절전을 이유로 당시 최고 인기 스포츠였던 고교 야구도 야간 경기를 하지 못하게 한 것에 비하면 파격적인 조치였다. 국민들은 스포츠의 열기 속에서 현실의 고단함을 잊었고 그렇게 아픈 시절이 흘러갔다.  

얼굴이 퉁퉁 부어오르고 입마저 비뚤어져버린 복싱 선수가 글러브를 낀 채 ‘각하’의 격려 전화를 받고 감격해 하던 모습을 생중계하던 시절이 있었다. 흘러간,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는 세상도 참 많이 밝아졌다. 올림픽도 곧 끝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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