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서울역’ 스틸. (제공: NEW)

좀비로 뒤덮인 서울역
인물들의 생존 위한 몸부림

연상호 감독, 좀비 통해서
가출청소년·정부 등
사회문제 사실적으로 그려

안정적인 목소리 연기
실감 나는 애니메이션 완성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한 노인 노숙자가 목덜미를 무언가에 물린 채 서울역 지하도를 배회한다. 그리고는 이내 쓰러진다. 노인 노숙자와 친분이 있는 다른 노숙자가 노인이 죽었다며 경찰서를 찾는다. 경찰과 노인이 쓰러진 곳으로 가니 핏자국뿐 노인 노숙자는 보이지 않는다.

가출소녀 ‘혜선(심은경 분)’은 남자친구 ‘기웅(이준 분)’과 함께 서울역 인근 모텔에서 같이 살고 있다. 마땅한 수입이 없는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돼 있다. 기웅은 인터넷에 혜선이 원조교제 상대를 찾고 있다는 글을 올리고 이를 알게 된 혜선이 “정말 하기 싫다”며 집을 나간다.

혜선의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간 사실을 알게 된 ‘석규(류승룡 분)’는 딸을 찾아 서울역으로 향한다. 남자친구 ‘기웅’을 만나게 된 ‘석규’는 모텔방에서 ‘혜선’을 기다린다. 딸이 지내던 모텔방에 들어간다는 게 찝찝했던 ‘석규’. 그때 옆방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부서진다.

“살려주세요. 이 아줌마 이상해요.”

좀비로 변한 모텔 주인아주머니는 ‘석규’와 ‘기웅’을 공격한다. 얼떨결에 좀비를 보게 된 기웅은 공황에 빠지고, ‘석규’는 ‘기웅’을 데리고 화장실 창문을 통해 옥상으로 탈출한다. 간신히 모텔에서 벗어난 이들은 서울역 인근이 좀비로 득실대는 것을 보고 기겁한다.

한편 ‘기웅’과 싸우고 나온 ‘혜선’은 서울역을 어슬렁거리다가 좀비의 습격을 받아 도망치는 노숙자 무리를 목격한다.

“도망쳐!!”

얼떨결에 도망치게 된 ‘혜선’은 닥치는 대로 사람을 물고 뜯어 버리는 좀비를 피해 서울역 인근 파출소로 몸을 피한다. 갑자기 들이닥친 좀비에 놀란 ‘혜선’은 이 상황이 무섭기만 하다. ‘혜선’은 ‘기웅’과 아빠 ‘석규’를 무사히 만날 수 있을까.

독보적이면서도 독특한 작품관을 구축하고 있는 연상호 감독이 천만 영화 ‘부산행’의 프리퀄 ‘서울역’으로 한 번 더 관객들을 만난다. 영화 ‘서울역’은 의문의 바이러스가 시작된 서울역을 배경으로 아수라장이 된 대재난 속에서 오직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좀비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무조건 때려죽이는 장면을 상상했다면 오판이다.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등에서 나타나듯이 연 감독은 위기가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 인간의 본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특히 ‘서울역’은 현 사회를 스케치한 것처럼 사실적으로 그려내 소름 끼친다. 먼저 서울역 인근을 영화 안에 그대로 담았다. 서울역 앞 광장, 지하도, 인근 공원, 약국 등 현 서울역을 그대로 담아 더욱 실감 나게 했다.

그대로 담은 것은 눈에 보이는 것뿐이 아니었다. 영화는 가출청소년들의 현실, 위기에 허술한 정부 등 무능력한 사회의 시스템을 ‘좀비’라는 재료를 활용해 지적했다.

경찰은 좀비를 피해 경찰서로 도망친 노숙자에게 총구를 겨눈다. 좀비를 보고 “노숙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고 지원을 요청한다. 이들에겐 노숙자는 좀비와 다름없는 존재인 것이다.

또 영화에서 좀비가 우후죽순으로 퍼져나가자 정부는 좀비를 피해 도망가는 시민들을 한 곳에 몰아넣은 뒤 불법시위로 간주하고 계엄령을 선포하려 한다.

뒤에서는 좀비가, 앞에서는 군대가 압박하자 시민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발악한다. 정확한 원인 규명을 하지 않고 산 사람들에게 물대포를 쏴대는 정부의 모습은 오늘날 ‘뭣이 중한지’ 모르는 정부의 모습과 흡사하다.

특히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난 평생 국가를 위해 일을 해왔어! 너희 같은 것들이랑 함께 죽을 수 없어! 이 모든 것은 빨갱이 때문이야”라고 외치는 한 남성의 모습은 보는 관객들을 부끄럽게 한다.

▲ 영화 ‘서울역’ 스틸. (제공: NEW)

연상호 감독은 “‘서울역’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스케치라고 생각했다. 관객들이 느끼는 사회적 공기 같은 것들이 영화에 담겨 있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라며 “애니메이션은 내가 가진 생각 중 극단적인 것들을 담아내기엔 좋은 그릇이다. 평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사는데, 그중에서 극단적인 생각을 보여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애니메이션이란 도구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배우들의 안정적인 목소리 연기도 한몫했다. 전시녹음으로 진행되는 영화답게 배우 류승룡, 심은경, 이준을 연기자로 캐스팅해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실감 나는 애니메이션에 깜짝 놀랄 정도다.

다만 ‘부산행’의 좀비 감염 바이러스의 확산 원인을 ‘서울역’에서 찾을 수 있다는 기대는 무산됐다. 영화는 좀비가 왜 시작됐는지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극심한 혼란에서 사람과 좀비를 피해 살아남는 것이다. 어쩌면 좀비보다 사람이 더 위협적인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는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는 요즘 세상을 완벽하게 묘사했다. 영화 ‘서울역’은 1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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