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우수한 인재들이 이공계에 진학해 산업계의 견인차가 되어주는 붐이 조성되지 않고 있어 우리나라의 미래가 심히 염려됩니다.”

의학계열 선호 추세가 계속되는 데 대한 어느 대학 교수의 푸념이다. 올해 서울대 공대와 자연대에 합격한 학생 중 동시 합격자 상당수가 지방대학 의대를 선택했다. 합격자 3300여명 중 입학 포기 학생이 전체의 10%가 넘는 346명이었다. 포기 학생들은 중복 합격한 다른 학교의 의·치·한의과대학 등에 진학했다고 한다. 취업난에 서울대 졸업장보다는 의사 자격이나 취업 특성화 전공을 선택하는 학생이 많았다. 꿈보다는 현실을 택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구조와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안타까운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말 걱정이다. 비전 없는 교육 문제뿐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왜 이런지, 한국이라는 공동체를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의 사고방식이 이대로 좋은지를 놓고 우려하며 한숨을 쉬는 이들이 많다. 잘못된 국민의식을 변화시켜 나가는 사회운동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다.

2년간의 강진 토굴 칩거를 마무리하기 직전인 손학규의 ‘국가대개조론’에는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까. 한국이 배금주의 물신주의에만 물들어있다며 지구촌에서 손가락질 받지 않고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할 선진국형 ‘저녁이 있는 삶’이 그의 중도실용주의 생활정치에 구현되면 좋겠다. “못난 대한민국을 미래 세대에 그대로 넘겨줘선 안 된다. 국가의 틀, 경제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미래가 없다. 잘사는 사람은 배 터지게 잘살고, 못사는 사람은 찢어지게 못사는 경제 상태는 국론 분열이 될 수밖에 없다.” 전국 민생투어에 나선 김무성이 던진 화두다. 민초들을 절망케 한 ‘금수저, 흙수저’ ‘유전무죄, 무전유죄’, 날로 심화돼 가기만 하는 양극화 현상에 혁명적이고 획기적인 해법이 나오길 기대해 봐도 될까.

안철수. 한때 의대생이자 벤처기업대표 출신이다. 몸으로 체험한 경험을 살려 이공계를, 산업계를 살릴 방안부터 내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양당체제의 폐해를 그냥 둘 수 없다며 몸을 던져 ‘새정치’의 길을 걷고 있는 데 대해 박수를 보낸다. 양당이 아직 정신 못 차렸다는 지적에도 공감한다. 그러나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국민의당 창당 시기는 몇 년을 거슬러 올라갔어야 했다. 2010년, 늦어도 2011년엔 그의 새정치 실험을 창당으로 구체화했어야 했다. 그는 한때 뜨거웠던 ‘안철수 현상’의 주인공이다. 만일 정치에 입문하지 않고 한발짝 물러서 청춘콘서트로나 저술가로 일관했다면 어땠을까. 필자는 그랬으면 더욱 좋았겠다는 견해다. 그의 정치 입문은 대통령병(病)에 걸리지 않고 올곧은 개혁가의 길을 걸어가는 젠틀맨 한 사람에 대한 기대를 우리 사회에서 그만 사라지게 했기 때문이다. 안철수재단의 활동은 왜 좀더 활성화시킬 수 없는가. 그가 갖고 있는 거대한 자금력이 개미투자자들의 피와 눈물의 결정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내년 대선에서 야권 내 단일후보가 되겠다는 ‘헌정치’에만 올인해서도 안 된다. 다른 정치인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진심 비운 마인드라야 국민을 감동시켜 다시 강한 경쟁력으로 권토중래할 길을 제시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문재인. 2012년 대선 때 부산에서 승부가 갈렸다. 부산에서는 39.87%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59.82%를 득표했다. 15대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부산에서 53.33%를 득표했다. 야권은 김대중 후보 15.28%, 이인제 후보 29.78%를 합하면 부산 전체가 45.06%. 부산 출신인 문 후보가 이에도 훨씬 미달하는 수치의 득표율을 기록한 것이다. 부산이 승부처라며 선거전날 항도 부산을 찾았던 그가 부산에서 고전한 이유는? 이유를 셋만 들어보자. 우선, 인(人)의 장막에 가려 있었다. 전적으로 친노 참모 한두 명이 기획한 전략에만 의존해 외연을 넓히지 못했다. 둘째, 대선 TV토론회에서 이정희 후보의 오버슈팅 발언에 멀뚱멀뚱 눈만 뜨고 굳어있었을 뿐 순발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셋째, 대선 전날 밤 광복동 남포동 거리는 발걸음을 옮기기 어려울 만큼 시민들로 꽉 메워져 있었다. ‘문재인’을 연호하는 그 엄청난 인파 앞에서 제대로 된 거리 연설 한 줄을 내놓지 못했다. 정치인답게, 대통령 후보답게 부산 시민의 가려운 데를 긁어줄 결정적인 한마디를 던졌어야 했다. 당시 압도적인 몰표를 던져준 호남 민심마저 이제는 저만치 돌아서버렸다. 이제는 친노패권주의라는 ‘패거리정치’를 뛰어넘어야 할 텐데. 대통령을 하건 못하건 사심 없고 도량 큰 국가지도자의 길만을 걸어갔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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