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협상은 역사에 오점을 남긴다. 좋은 의도로 진행했더라도 피해자도 모르는 협상이라면 더욱 그렇다. 지난 10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제4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세계연대집회 및 제1243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를 열고 12.28 한일 외교장관 합의 무효를 주장했다. 정대협은 성명서를 통해 “피해자들을 배제하고 피해자들의 25년의 요구를 철저히 외면한 12.28 합의는 일본군 ‘위안부’ 범죄의 주체와 명확한 범죄사실 및 불법성조차 인정되지 않은 엉터리 합의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비판했다.

한일 외교장관 합의처럼 정작 피해자는 모르는 협상이 50여년 전에도 있었다. 1965년 6월 22일 ‘한일청구권협정’ 체결로 일제강점기에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의 대일 청구권 문제를 한일 정부가 매듭지었다. 우리나라는 당시 3억 달러를 받았다. 1965년 우리나라 GDP가 31억 달러였으니 GDP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한일청구권협정에는 강제동원 피해자 개개인의 청구권을 제한하는 조항이 있었다. 제2조 1항에 ‘대일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간 이 조항을 근거로 한국에 더 이상 보상할 게 없다면서, 강제징용자나 위안부 등 개개인에 대한 보상도 끝났다고 주장해 왔다. 50여년 전 故 박정희 대통령은 피해자도 모르는 보상금을 받아 포항제철을 세우고,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었다. 나라 발전에 썼지만 정작 피해자들에게는 양해도 구하지 않았으며, 수익금이 생긴 후에도 정부는 나 몰라라 했다.

지난 25년간 진정한 사과를 촉구해온 위안부 할머니들은 50여년이 지나 피해자에게 아무런 언질도 없이 이뤄진 합의를 치적으로 내세우는 정부를 보며 또다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일제에 유린당한 수많은 조선 여인의 恨을 대신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요구는 말 한마디와 돈 몇 푼에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일본뿐 아니라 우리 정부도 피해자의 마음을 읽지 못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영토와 주권뿐 아니라, 피해와 명예도 회복돼야 진짜 광복(光復)이다. 그렇기에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진정한 광복절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광복 71주년, 집집마다 걸린 태극기가 부끄럽지 않을 정치권의 상식적 태도와 역사인식이 참으로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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