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덕혜옹주’의 허진호 감독이 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천지일보와의 인터뷰 전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38년 만에 귀국한 옹주에게
상궁들의 절하는 모습에 감명
영화화하고자 고민하던 찰나에
소설 덕혜옹주 출간돼 방향 잡아

일제강점기 투쟁 많이 그렸지만
한을 담은 영화는 없던 것 같아
민족의 한, 덕혜옹주 통해 표출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1998년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며 담담한 일상을 보내던 한 남자와 주차단속원으로 일하는 젊은 여자의 사랑을 절제된 감정으로 풀어낸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로 이름을 떨친 허진호 감독.

영화 ‘봄날은 간다’ ‘행복’ ‘외출’ 등의 멜로 영화로 대체할 수 없는 감성적 감독으로 등극하게 된 그가 영화 ‘덕혜옹주’로 다시 도약했다. 영화 ‘덕혜옹주’는 일본에 끌려가 평생 조국으로 돌아오고자 했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철학과 출신답게 인물들의 감정 변이와 갈등을 풍성하게 그려낸 허 감독이 그리는 비운의 역사 속 덕혜옹주는 어떨까. 멜로의 거장 허 감독이 역사 속 인물을 그려낸 덕혜옹주를 연출한 이유는 무엇인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들어봤다.

▲ 지난달 서울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영화 ‘덕혜옹주’ 시사회가 진행된 가운데 허진호 감독과 배우 손예진이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6~7년 전에 덕혜옹주 삶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어요. 굉장히 우여곡절이 많은 인물이었어요. 그게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됐죠.”

사랑을 듬뿍 받던 덕혜옹주는 아버지가 독살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이방자 여사의 자서전 등을 보면 덕혜옹주는 밝았고 똑똑했지만 강제로 일본에 끌려가서 힘든 삶을 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강제로 결혼하게 되고 결국 정신병원까지 가게 된 덕혜옹주. 허 감독은 그 안에서 굉장한 감명을 받는다.

그는 “영화 마지막에 공항장면은 실제로 있었던 일을 재연한 것이다. 어린 시절 덕혜옹주를 모셨던 상궁들이 38년 만에 귀국한 옹주에게 절한다는 것은 굉장히 울림이 컸다”며 “그래서 영화로 만들자고 생각했다. 비극적인 이야기만 담고 있었으면 영화로 만들지 않았을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주위에 있는 영화관계자들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예산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데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에 더구나 큰 업적이 없는 덕혜옹주라는 인물이 주인공을 하기엔 무리라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권비영 작가의 소설책 ‘덕혜옹주’가 출간됐다.

“가상이지만 덕혜 내면에 대해 알 수 없는 부분이 잘 묘사돼 있었어요.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니 이례적인 일이라며 많은 사람이 놀랐죠. 그때 ‘덕혜옹주라는 소재가 가진 대중적인 접점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영화를 시작했죠.”

이처럼 많은 국민이 덕혜옹주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유는 뭘까. 덕혜옹주를 연기한 배우 손예진도 “연기할 때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다른 영화와는 다른 책임감이 생겼다”고 밝힌 바 있다.

허 감독은 “우리 민족의 한이 덕혜옹주를 통해 표출된 것이 아닌가 싶다. 책에서 읽었던 일제강점기 조상들이 겪은 한”이라며 “일본과의 싸움, 투쟁을 했던 영화들은 만들어졌는데 그 시절 당했던 한을 담은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의 삶을 다룬 영화 ‘덕혜옹주’ 스틸컷. (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덕혜옹주의 귀국을 위해 애쓰는 김장한은 실존인물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김장한의 형 김을한이 신문기자로 일본에 갔다가 덕혜옹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귀국을 위해 노력했다.

이와 관련해 허 감독은 “영화 전개를 위해 새로운 인물을 만들었다. 사실 김을한 아내가 덕혜옹주와 초등학교 동창이다. 김을한은 아주버님과 제수씨가 될 수 있던 인연”이라며 “그런 부분을 영화적으로 가져와서 한 인물로 가져오면 어떨까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장한이 영화에서 육군사관학교를 나왔다고 설정됐지만 사실 당시 한국 사람은 못 들어가는 학교였다. 1년에 1명꼴로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록들을 보니 영친왕이 육사에 들어갔을 때 그를 수행해주기 위해 지청천 장군이 같이 들어갔더라”고 덧붙였다.

군중 앞에서 덕혜옹주가 강연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실제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팩트를 발췌해서 살을 붙였다. 그는 “조선 노동자들이 노동 착취를 많이 당했다. ‘일본군들은 조선노동자들의 손가락이 잘리면 공깃돌로 썼다’는 부분도 사실”이라며 “덕혜옹주는 조선노동자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일본을 찬양하는 식의 강연으로 사용당했을 것 같았다. 연설을 일본말로 하다가 한국말로 하는 부분은 상상력이다. 영화적 허용치에서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덕혜옹주의 삶이 정말 비극적이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을 보여주는 삶이지만 영화가 우울하지만은 않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 역사에 슬픔을 느끼는 것을 넘어 위로가 되는 그런 느낌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편하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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