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민심을 거스르는 정치인이나 정당은 도태되기 마련이며 그 일차적인 책임은 그들에게 있다. 하지만 국민이 그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뗄 수 없는 ‘볼모’가 되어 버리기 예사인 것은 그들이 잘 하고 못하고에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행복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때로는 지금과 같이 나라 안팎의 여러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서도 소리(小利)에 집착해 싸우기에만 정신이 팔린 정치인들을 국민들은 크게 걱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정치는 나라의 운명과 국민의 행복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공동체 운영의 조건이어서 정치인들과 정당의 행사에 밉거나 싫거나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래서 국민은 영락없이 그들의 볼모가 되고 만다. 

어느새 또 임기를 채워가는 한 권력이 저물어간다. 그 권력을 창출했던 집권당 새누리당의 새 대표, 그러니까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는 ‘브릿지(bridge) 당권’을 행사할 새 대표를 선출하는 행사 역시 그런 배경에서 적잖은 관심을 모았다. 정치가 매사에 ‘해결사’가 아니라 도리어 ‘리스크(risk)’가 되고 있는 현실에 실망한 국민이 너무 많은 시기여서 ‘국민의 관심’은 정확히는 ‘무관심 속의 관심’ ‘흥행 없는 관심’이었다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겉으로 펄펄 끓어올라 넘치게 관심이 분출되지 않았을 뿐이지 속까지 싸늘하게 식었던 것은 아니라고 볼 이유 역시 충분하다. 당이 새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여는 순간까지 그 많던 의석수가 풍선 바람 빠지듯 폭삭 쪼그라든 총선 참패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내홍(內訌)에 빠져 있었다는 것도 그런 이유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국민들은 그들을 심판했기에 그들 패배의 원인과 책임에 대해 너무나 빤히 알고 있었다. 그런 국민 앞에서도 솔직하고 겸허하게 패배의 책임을 자인하고 나서는 당내의 개인이나 계파는 없었다. 원론상 국민에게 물어봐야 할 공천을 드러내놓고 자신들의 입맛대로만 처리해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민심을 떠나게 했던 권력 핵심(core)의 호위무사들에게서도 국민이 기대하는 모습인 오만을 후회하고 반성하는 빛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도리어 국민이 한숨지으며 바라보거나 말거나 책임공방과 당내 패권 장악을 위한 선거 후의 새로운 계파전쟁, 바로 그들을 총선 참패의 나락에 빠뜨린 구태의연한 그 혐오스러운 싸움을 새삼스레 전개하고 나섰다. 새 대표를 뽑아 심기일전을 도모해야 마땅한 전당대회마저 선거 운동 초반 후보들이 하나 같이 탈(脫)계파를 부르짖었으나 막판에는 아니나 다를까 계파싸움으로 치러지고 말았다. 지금 치러진 전당대회의 의미는 더 말할 것 없이 총선 후유증과 혼란을 극복하고 전열을 정비해 얼마 남지 않은 새 대선(大選)을 준비하는 그들 당의 절박한 현안이며 국민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는 중요행사였다. 그렇게 중요한 행사에 그들이 헤엄치는 연못이며 활동무대인 국민의 각별한 관심이 쏟아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어떻든 새 대표는 자신이 친박(親朴)임을 당당하게 밝히며 선거운동을 한 호남 출신 3선 의원 이정현이었다. 다른 후보들은 득표의 외연(外延)을 넓히기 위해 ‘원조 박’이니 ‘범박(凡朴)’이니 ‘진박(眞朴)’이니 하면서도 계파에 초연한 듯한 기회주의적인 인상을 풍기려 애썼으나 그는 걸코 그러지를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비박(非朴)이 단일화로 뭉친 선거판에서 여전히 새누리당의 주류인 친박의 결속을 가져와 그를 압승하게 해주었으며 선거는 자연히 계파 싸움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더라도 새누리당에서 아웃사이더(outsider)이며 기댈 텃밭 표도 많지 않은 호남 출신이 뿌리 깊은 보수 여당의 대표가 된 것은 일견 이변이다. 그렇지만 잘 들여다보면 당원들에 의한 최선의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절대로 호남 텃밭표가 그를 대표로 만들어 준 것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그 같은 선택이 지도부의 ‘작위(作爲)’가 개입된 것이라는 불만도 제기되고 있으나 선거가 계파 싸움이 된 이상 설사 그랬더라도 그것이 설득력 있는 항변은 될 수 없다. 더구나 ‘작위’가 별로 작용하지 않은 자연발생적인 표의 쏠림이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도 없지만 선출된 인물이 호남 출신이라는 익숙지 않은 ‘충격(shock)’이 역설적으로 부정적인 기류들을 잠재우고 있는 것 같다. 이정현 새 대표는 당선 소감에서도 ‘당·청(黨·靑) 밀월’을 강조했다. 그것이 권력의 위세가 저물어가는 상황에서 그에게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가 좌면우고 없이 골수 친박임을 밝히고 선거운동을 했듯이 외부 시선에 전혀 개의치 않는 단심(丹心)과 항심(恒心)을 소신으로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그것이 호남 출신임에도 그에게 표의 쏠림이 나타나도록 만든 커다란 요인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더구나 국민은 새누리당에 환골탈태(換骨奪胎)의 변화를 요구한다. 이 같은 정치 환경에서는 그가 호남 출신이라는 의외성만으로도 국민과 당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그것이 조용하지 않은 당에 만파식적(萬波息笛)이며 알파요 오메가일 수는 없다.  

그를 대표로 선택한 것은 절묘한 전략적 고려의 작용이지만 기대 반 우려 반이 섞인 궁여지책일 수도 있다. 그는 또 말하기를 ‘죽어야 산다는 마음으로 새누리당을 바꾸겠다’고도 했다. 말은 그렇지만 쉬운 일이 아니며 그렇기에 그는 어려운 시험대에 올라섰다.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계파 전쟁은 더 치열해지고 자칫 당이 찢어질 염려가 아주 없다고도 할 수 없다. 협치(協治)가 불가피한 정치 환경에서 원활한 국정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대야(對野) 관계를 무난하게 이끌어가는 일 또한 지난한 과제다. 당청 밀월이라는 것도 민심과 같은 방향으로 동행돼야 국정이 원활하고 세상이 평화롭다. 다시 말하면 청와대나 행정부가 민심에서 멀어질 때는 추임새만 넣는 당대표가 아니라 민심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하고 쓴소리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또 비박 최고위원 한 사람을 빼고는 당 대표인 자신을 포함해 당 최고 지도부가 친박 일색인 이 당을 어떻게 반대 계파와 국민의 기대수준만큼 확 바꿀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과제 역시 그를 밤잠 설치게 해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정당이 바로 서야 정치가 바로 선다. 그렇다면 이정현 새 대표에게 자신의 당도 살리고 정치도 살리며 국민도 행복하게 해주는 멋진 한 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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