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1일 오후 5시 16분께 부산 해운대구 좌동 해운대문화회관 사거리에서 푸조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 맹렬한 속도로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를 친 뒤 교차로로 진입해 차량과 부딪히고 있다. 이 사고로 3명이 숨지고 14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출처: 연합뉴스)

운전자 뇌전증 숨기고 면허 갱신 드러나
경찰, 수시적성검사 확대 방침
규정 약한 틈 적성검사 ‘사각지대’

[천지일보=이지수 기자] 운전자 건강상태에 따른 교통사고 방지를 위해 시행 중인 적성검사가 형식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달 31일 오후 부산 해운대문화회관 교차로에서 17명의 사상자를 낸 외제차 운전자 김모(53)씨가 자신의 뇌전증 병력을 숨기고 운전면허를 갱신한 것으로 드러났다.

3일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11월부터 뇌전증이 발병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성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정신병과 뇌전증 여부를 묻는 질문에 ‘없음’으로 체크한 것으로 드러났다. 면허시험장 적성검사에서 김씨는 시력, 청력, 팔·다리 운동 등 간단한 신체검사만 했을 뿐 면허 결격 사유인 뇌전증에 대한 검증은 이뤄지지 않은 채 통과했다.

뇌전증 환자의 경우 면허 취득 또는 갱신 시 적성검사에서 반드시 자신의 병력과 약 복용 사실을 알려야 하지만 김씨는 자신의 지병을 숨기고 허위로 적성검사를 받아 면허를 갱신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운전면허 취득과 갱신을 위한 적성검사가 형식적으로 진행돼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적성검사가 간단한 신체검사로 단 몇 분 안에 끝나고 정신질환자나 뇌전증 환자는 응시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응시자가 병력을 스스로 밝히지 않는 이상 면허취득을 제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운전면허 적성검사는 면허 발급일 기준으로 일정 기간 내에 받아야하는 정기적성검사와 질병에 의해 ‘수시로’ 받아야 하는 수시적성검사로 나뉜다.

논란이 되는 것은 수시적성검사다. 대상자는 수시적성검사를 통보받은 후 3개월 안에 적성검사를 받아야 하며 특별한 사유 없이 적성검사를 받지 않으면 면허가 취소된다. 해운대 교통사고의 후속대책으로 경찰청이 수시적성검사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현행 수시적성검사가 부실하게 이뤄지고 있어 운행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수시적성검사는 운전자 본인이 직접 신청하거나 관련 기관의 통보에 따라 도로교통공단이 대상자를 선정해 직접 심의한다. 복지부나 지자체, 군대, 국민연금공단, 근로복지공단 등의 기관은 정신질환자, 알코올·마약중독자 등 운전면허 결격 사유 해당자 정보를 경찰청과 도로교통공단에 통보하지만 규정이 약해 사각지대가 많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3일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 기간 도로교통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신질환과 알코올 중독, 뇌전증 등 정신장애를 가져 국가기관으로부터 운전면허 수시적성검사 대상자로 통보받고 검사받은 인원 대다수가 도로교통공단의 적성검사를 무사 통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시적성검사를 강화한다고 해서 운전 적격성이 가려지기는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자료에 따르면 정신질환으로 2011년부터 2015년 7월까지 각 기관으로부터 수시적성검사 대상자로 통보돼 공단의 적성검사를 받은 사람은 모두 6282명이지만 이 중 면허가 취소된 사람은 총 141명이다.

이는 전체 검사 대상자의 2.2%에 불과하며 나머지 98%는 판정이 유예되거나 검사를 통과해 면허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전증 환자의 경우 전체 1359명 중 41명만 면허가 취소되고 98%의 면허는 유지되고 있었다.

경찰은 뇌전증 환자 중 상당수가 운전면허 취득 이후 뇌전증 장애 판정을 받아 운전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재원 도로교통공단 부산지부 교수는 “뇌전증 운전자는 도로를 달리는 시한폭탄인데 이번 참사도 허술한 운전면허 제도로 인한 예견된 사고였다”며 “독일처럼 개인 병력을 면허발급기관과 병원이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결격 사유에 해당하는 면허를 일단 보류하고 정밀감정해 부적격자를 가려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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