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광대학교 김홍철 명예교수. ⓒ천지일보(뉴스천지)

한국신종교대사전 발간
김홍철 원광대 명예교수 인터뷰

“우리 민족, 종교성이 강하고 세계 종교도 흡수 가능해
신종교 창시자들, 그 시대 안고 있던 문제 해결에 앞장”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한국 신종교는 정신문화의 보고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불선 삼도를 아우르면서도 각기 활동을 했지요. 서양의 종교와 무속 계통까지 다 융해돼 있었던 융통성이 뛰어난 놀라운 사상이었다고 보고 싶어요. 세계의 종교들까지 모두 흡수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놓았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상당히 종교성이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억압 속 암울한 현실을 견뎌내고자 숨죽여 신앙생활을 해왔던 이들이 있다. 신흥종교라고 알려진 한국의 신종교인들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6.25 동란을 거쳐 경제성장을 위해 ‘고난’의 세월을 견디며 자생한 한국의 신종교들은 얼마나 될까.

1860년 수운 최제우에 의해 천도교가 등장한 이후 나타난 신종교가 어림잡아 500여 곳이란다. 그러나 이 중 현재까지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단 50여 곳 뿐이다. 학자들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러한 한국 신종교 분야에 반백년의 세월을 바쳐 연구한 이가 있다. 원불교 교무이기도 한 김홍철(78, 법명 김성철) 원광대 명예교수다. 1967년 원광대 도서관 사서로 일하다가 신종교를 처음 접한 김 교수는 스승 유병덕 박사 문하에서 학통을 이었다. 최근 그는 무려 1236페이지, 원고지 1만 5000매에 달하는 분량의 ‘한국신종교대사전(모시는사람들)’을 펴냈다. 개인의 저작물이라고 보기엔 어마어마한 양이다.

김 교수를 최근 서울 용산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전북 익산에서 인터뷰를 위해 일부러 올라왔다는 그는 가방을 열고 한 손에 들기 어려울 정도로 묵직한 한국신종교대사전을 꺼내 보였다. 우리 나이로 여든이라며 웃는 그는 아주 건강해보였다. 그와 한국의 신종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 한국신종교대사전은.
한국 신종교를 연구주제로 일생동안 연구해왔다. 이 연구 성과를 전후 10년간에 걸쳐 사전형태로 재구성한 것이다. 한국신종교의 실태를 학술적으로 구명하고 집대성한 사전으로 현황과 중심사상을 파악하는 데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한국 신종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대학 강단에 서면서부터 학문적 관심이 신종교 연구였다.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에서 스승인 유병덕 박사와 함께 활동했다. 현지를 답사하고 자료를 수집해 기관지 ‘한국종교’에 발표하고 단행본을 발행했다. 또 원불교사전과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 등 결과물도 냈다. 스승 고 류병덕 박사의 학문적 토대 위에 이 모든 연구가 전개됐다. 이번 한국신종교대사전도 그 학통을 계승하려고 노력해온 결실이다.

- 국내 종교학계에서 신종교에 대한 연구는 어떠했나.
한국신종교에 대한 국가적 조사연구는 1997년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에서 출판한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 류병덕 양은용 공저, 문화관광부 지원)’를 마지막으로 이후는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1936년 조선총독부의 조사연구 ‘조선의 유사종교(무라야마 지준)’가 이뤄진 이후 1970년 ‘한국 신흥 및 유사종교실태조사보고서(장병길 외 공저, 문화공보부 지원)’, 1985년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한국종교학회, 윤이흠 외 공저, 문화체육부 지원)’가 이뤄진 흐름을 이은 것이다.

- 한국 신종교의 특성은 뭐라고 생각하나.
대부분 민중층을 배경으로 하고 그들의 한과 원을 대변해주는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수운의 동학은 강한 현실비판과 부조리 척결로 시작되고 있으며, 그 뒤 동학농민혁명, 3.1운동, 그리고 1920년대의 신문화운동으로 이어지는 현실참여로 일관하고 있다. 일부 정역사상에 나타나는 가르침은 천지운도 변화에 따른 후천개벽의 시작이 이 땅에서부터 전개된다는 민중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었다.
증산은 착취당하고 억압받아 원과 한이 서린 민중 속에서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좌절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했다. 소태산은 자력갱생운동을 통해 잘못된 인간의 정신, 민족의 정신, 인류의 정신을 개혁·개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처럼 한국 신종교 창시자들은 한결같이 그들이 처해있던 시대상황에 정통하고 그 시대가 안고 있던 문제들을 과감하게 혁신·창조하는 사회개혁운동에 앞장섰다.

- 신종교가 꼭 긍정적인 역할은 한 것만은 아니지 않나.
물론 한국 신종교 역사를 돌이켜보면 부정적인 면도 발견된다. 종교일 수 없는 집단들이 종교로 행세하면서 빚어낸 사회적 물의·비리·비행 등도 있었다.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소수집단의 일탈 행위 때문에 신종교 내지 종교계 전체가 크게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는 처음부터 종교를 이용한 사기집단의 행위였다. 그러나 그 숫자는 극히 적었고, 때로는 과대포장돼 언론에 보도됐다.

- 논문이 20여편 수록되는 등 기존 사전형태와는 다른 것 같다.
그간 신종교에 대한 여러 형태의 연구가 많이 진행됐지만 한국의 모든 신종교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된 것은 드물었다. 그래서 사전 형식이 좋을 것 같아서 이 같은 형식을 취한 것이다. 교명·창립자·서적·용어·인물·사건·단체 및 신종교들이 강조하는 중요 사상과 개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신종교 연구를 하며 작성한 100여편의 논문 중 20여편을 골라 신종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수록했다.

- 신종교에 대한 분류는 어떻게 했나.
한국신종교는 1860년 수운 최제우의 동학 창도를 기점으로 150년의 역사를 헤아린다. 계통은 수운(水雲)·일부(一夫)·증산(甑山)·단군(檀君)·불교(佛敎)·유교(儒敎)·선도(仙道·道敎)·기독교(基督敎)·봉남(奉南)·각세도(覺世道)·무속(巫俗)·외래(外來)계 등 12가지로 분류하고 어디에도 해당이 되지 않는 종교를 계통불명으로 구분했다. 이 종교들에 나타나는 중심사상을 후천개벽(後天開闢)·원융회통(圓融會通)·민족주체(民族主體)·인간중심(人間中心)·사회개혁(社會改革) 사상으로 요약했다.

- 신종교에 대한 설명이 종교마다 편차가 있는 것 같다.
엮고 나니 인적사항 등 기본 요건을 밝히지 못한 것 등 미흡한 점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일본은 종교법인법이 있어서 교명·창립자·교지·경전·활동 등 기본적인 사항들이 공개돼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러한 법이 없어서 실상을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또 본의 아니게 교단의 뜻과는 다른 표현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 미흡하게 다룬 교단도 있을 것이다. 특히 2000년 이후의 변동사항이나 새로 창립된 신신종교에 대해 모두 다루지 못한 점도 있다. 천도교·증산교·원불교 이외의 신종교들에 나타나는 중요 개념이나 사상에 대해서는 거의 해설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부분은 후학들의 과업으로 남기고자 한다.

약력
- 원광대 문학석사·철학박사·교수 역임
- 원광대 출판국·교학대학·교학대학원장 역임
- 일본 경도불교대학 객원교수 역임
- 원광대 종교문제연구소장 역임
- 원광보건대학 학장 역임
- 한국종교학회 회장 역임
- 현 원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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