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죄책감은 타고 나는 것인가, 아니면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것인가? 죄책감뿐만 아니라 모든 감정은 본능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면서 어떻게 발달하고 분화하는지는 후천적 경험에 의해서 달라진다. 특히 죄책감은 양심과 도덕의 발달과 연관돼 있기 때문에 더더욱 교육 등 환경적인 요인과 관련이 크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언제부터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가지게 혹은 표현하게 될까? 대개 3∼4세부터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연령별로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미안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의 자연스러운 아이들의 반응을 살펴보자.

예를 들어 자신이 친구를 밀어서 친구가 다쳤을 때다. 1∼2세의 아이들은 자신이 친구를 밀어서 그가 다친다고 할지라도 별다른 감정을 갖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서 그렇게 됐다는 인과관계조차도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죄책감이 들 리 없다. 오히려 친구가 울거나 아파하는 모습에 아이도 놀라서 함께 울 수 있다. 2∼3세의 아이들은 어렴풋이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기도 하지만 이는 대개 주변 사람들의 반응 때문이다. 역시 죄책감을 느끼기보다는 ‘내가 무엇인가 잘못을 했구나’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수치심을 더 많이 느낀다. 3∼4세의 아이들은 죄책감을 느끼게 되면서 친구의 아픔에 공감을 한다. 친구에게 다가가서 얼마나 다쳤는지 살펴보고, 친구를 위로해 주기도 한다. 일부 아이들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혼날까봐 도망을 치기도 한다. 4∼5세의 아이들은 죄책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상황의 파악(예: 친구가 얼마나 다쳤는지)과 의도성의 여부(예: 친구가 미워서 밀었다 혹은 실수로 밀었다)에 따라서 다르게 반응한다. 친구가 많이 다쳤으면 자신도 크게 놀라 부모에게 달려와서 상황을 알리고, 자신이 일부러 그랬으면 가만히 있거나 도망을 치기도 하며, 실수로 그랬으면 친구를 일으켜 세워주면서 “미안해. 모르고 그랬어”라는 말을 할 것이다.

만일 다른 아이와의 놀이상황에서 내 아이의 잘못으로 누군가에게 미안해해야 할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부모가 아이에게 취할 수 있는 바람직한 태도는 어떤 것일까? 1∼2세의 경우 아이를 야단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상황이 벌어졌음을 일러주면서 부모가 대신 사과를 한다. 예컨대 “OO야, 친구가 넘어져서 다쳤어”라면서 상대친구 부모에게 “죄송합니다”라며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2∼3세의 경우 인과관계를 알 수 있게끔 대응해 준다. 즉 “OO야, 네가 밀치니까 친구가 넘어져서 다쳤잖아”라고 말해준다.

아이가 어느 정도 인지를 하는 경우 사과도 직접 시킨다. “‘미안해’라고 말해주고 친구 안아줘”라고 올바른 대처법을 가르칠 수 있다. 3∼4세의 경우 죄책감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즉 “너도 친구에게 미안하겠구나. 하지만 실수로 그랬으니까 다음부터 조심하자” 내지는 “네가 일부러 그랬으면 큰 잘못이야. 친구에게 많이 미안해야 해”라는 말을 들려줄 수 있다. 5∼6세의 경우 아이의 대응을 먼저 지켜본 다음에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지적을 해 준다. 즉, 사과를 시키거나, 친구에게 다가서게끔 하거나, 잘못을 인정하게끔 하는 등이다.

한편, 죄책감이 강한 엄마의 경우 아이에게 이를 강요할 수도 있다. 죄책감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꼭 있어야 할 필요한 감정이지만, 그것이 지나친 경우 개인의 정신건강, 특히 아이에게 있어서는 정서적 발달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아이의 죄책감을 강하게 유발시키거나 강요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만일 그러한 경우 아이는 ‘나는 못난 아이야’ 또는 ‘우리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등의 자기비하적인 부정적 사고방식을 갖게 되어 매사 자신감이 떨어지고 위축된 모습을 보이게 된다. 또한 강한 죄책감 자체가 아이의 각종 증상을 초래하는데, 악몽(엄마에게 야단맞는 꿈), 야경증(자다가 갑자기 깨어나서 심하게 놀라며 우는 증상), 야뇨증, 불안, 우울 등의 증상들이 그것들이다. 이제부터 부모는 아이의 죄책감을 현명하게 다루어 줄 필요가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