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은(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수석연구원. ⓒ천지일보(뉴스천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이정은 박사

[뉴스천지=김예슬 기자] “씨 안에는 꽃의 모양, 맺을 열매, 색깔 등 모든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3·1운동은 비록 바로 싹을 틔우지는 못했지만 누구도 속박할 수 없는 자유의지의 나라, 나아가 세계를 이롭게 할 수 있는 문화가 있는 민족이라는 것을 역사 가운데 뿌린 씨와 같습니다.”

이정은 박사의 말이다. 이정은 박사는 1985년 이래 지금까지 천안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에서 3·1운동을 연구해 온 수석연구원이다.

◆목숨 던진 민족대표 33인

3·1운동이 일어났던 시대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이자 식민지 지배를 벗어던지고 많은 나라가 민주주의를 지향하며 독립을 외치던 시기이다. 하지만 3·1운동은 여느 혁명, 운동과  비교할 수 없는 3·1운동만의 우월함이 존재한다.

이 박사는 “러시아 혁명이나 프랑스 혁명은 낡은 구시대가 힘이 없어질 때쯤 일어났다”며 “이러한 상황 속에 일어난 혁명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이 박사는 “하지만 당시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탄탄한 경제성장과 식민지 체계를 굳건히 다지던 일본의 지배하에 ‘독립운동’을 한다는 건 불가능 속에 몸을 내던진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대표 33인이 3·1운동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상황을 ‘가능하다, 불가능하다’가 아닌 시대에 맞는 정당한 일인가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3・1운동 주인정신 실천

이 박사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은 독립선언서를 전달해 민족 대단결을 이뤘으므로 그들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임무는 수행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이 박사는 “더군다나 독립운동가로 일해 왔던 사람들이 아니라 종교지도자들이었다”며 “목숨을 던져야 하는 두려운 상황 속에서 먼저 희생한 그들의 정신과 마음은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3·1운동을 21세기운동이라고 표현했다. 그 이유는 완벽한 조직, 운동체계를 갖춰놓고 ‘나를 따르라’ 식의 20세기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운동의 목적을 국민들에게 이해시켜 모두가 주인정신을 갖고 실천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 박사에 따르면 민족대표 33인은 스스로 독립운동의 계기이자 모델이 돼 국민 모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최후의 일인이 최후의 일각까지 참여해 주길 바랬다. 실제로 3·1운동은 학생, 어른 할 것 없이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이 박사는 독립을 위한 좋은 방향, 목표를 먼저 실천함으로써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 내는 데 성공한다면 굳이 누군가 나서서 강압적인 지도를 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그 운동을 향해 대하처럼 흘러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게 3·1운동이라고 말했다.

◆한국 3・1운동 싹 트였다

한국은 이제 3·1운동의 꽃을 피우는 시기에 이르렀다. 제대로 된 봄을 맞은 셈이다.

이 박사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모진 시련을 이겨낸 대한민국은 오늘날 한류문화, 올림픽, 여러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고 세계에 감동을 주고 있다”며 “특히 개인전만큼이나 단체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올림픽 선수들을 보면 3·1운동 때 보여 줬던 우리 민족의 잠재돼 있는 저력을 보여 주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독립선언서 내용 중 ‘위력의 시대는 가고 도의 시대가 온다’는 말에 대해 “1차적으로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민중이 일어나고 민주화가 시작되려는 시대적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50년, 100년 앞을 내다본 21세기적인 3·1운동을 통해 ‘오늘날과 같은 먼 미래를 꿈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박사는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 시에서 ‘타고 남는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라는 가사를 읊었다.

이 박사는 “물리적인 생각으로는 재가 기름이 될 수 없지만 많은 전쟁, 식민지, 분단의 아픔을 겪으며 연단, 정화의 과정을 거친 우리 민족의 오늘날 활약상은 세계화 시대를 맞은 이 세상을 더 이롭게 하도록 운명 지워진 민족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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