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안이 옆에서 볼 수 있어 설레고 좋아
무슨 생각하는지 물어보며 연기하기도
마동석 선배 덕분에 부부호흡 잘 맞춰
특수성 가진 영화인데도 정서 담아
부산행 나에게 남달라… 데뷔하는 기분
어떤 배우가 돼야 할까 영화 통해 고민
의미 있는 작품 출연만으로 고마워
좋은 이야기를 만났으면 좋겠어요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어느 매체, 누구 기자입니다’라고 형식적인 인사를 건넨다. 이때 대부분의 배우는 내가 준 명함을 자세히 보지 않고 다른 기자의 명함을 받기 바쁘다. 빨리 인터뷰를 소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름이 많이 알려진 유명배우들이 더 그렇다. 이 같은 인터뷰는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재미가 없다. 형식적으로 질문을 주고 답을 받는다. 인터뷰가 끝나면 그냥 ‘안녕’ 즉, 끝이다. 남는 게 없어 마음이 헛헛하다.
20일 개봉한 영화 ‘부산행’ 관련 인터뷰를 목적으로 만난 배우 정유미는 달랐다. 명함을 받은 뒤 얼굴을 보고 방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정유미의 테이블 앞에는 립밤과 핸드크림이 놓여 있다. 소소하고 귀여운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도회적인 이미지로 차가울 것이라는 편견이 깨졌다. 인터뷰 전 노트북으로 ‘영화배우 정유미’를 검색했고 그 창을 그대로 띄어놓은 채 인터뷰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자 정유미가 “어? 나다! 저예요”라며 물으며 부끄러워했다.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인터뷰가 시작됐다.
“항상 일을 너무 하고 싶어요. 그런 와중에 ‘부산행’ 시나리오가 들어왔는데 재미있었어요. 읽다 보니 감독님이 궁금해서 만났는데 ‘이 감독님과 영화 찍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또 아역배우로 수안이가 나온다고 해서 정말 좋았어요. 수안이는 전부터 제가 되게 좋아하던 배우거든요. 만약 이 작품을 수안이와 함께하게 된다면 정말 좋을 거 같은 거예요(웃음).”
영화 ‘부산행’에서 만삭의 몸으로 위험한 사람을 도와주는 성경 역으로 열연한 정유미는 아역배우 김수안의 팬을 자처했다. 김수안의 출연작을 모두 봤다는 그는 “수안이처럼 연기하고 싶다. 좋아하는 배우를 옆에서 볼 수 있어서 너무 설레고 매일매일 좋았다”며 “아이의 생각을 따라 하고 싶어서 ‘무슨 생각해’라고 물었다. 그러자 수안이는 ‘무(無)생각’이라고 답했다. 이런 대화를 나누다가 ‘슛’ 들어가면 뛰고 그랬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동안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에릭, 유아인, 이선균, 이진욱 등 배우들과 완벽한 케미를 보여줬던 정유미는 이번에 배우 마동석과 부부로 나온다. 어떻게 보면 안 어울릴 수도 있는 조합이지만 둘은 부부로 감동과 재미를 선사했다.
이에 정유미는 “지금 저희가 계속 주입하고 있는 거다. 제가 느끼기에도 달라진 게 있는 것 같다. 처음엔 다들 ‘둘이 어울려?’라고 했는데 지금은 ‘너무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며 “마동석 선배님과 부부로 호흡 맞춘다고 했을 때 ‘어떻게 잘 어울릴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사실 영화에서 부부로 호흡하는 장면이 많지 않았는데도 좋아해 주시는 것은 마동석 선배님 덕분”이라고 칭찬했다.
그는 “감성, 이성 누구나 있지만 현장에서 컨트롤하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많은 배우가 잘하고 있지만 저는 어렵다. 그런데도 마동석 선배님은 그걸 잘 넘나드시더라. 영화가 좀비 영화고 특수성이 있다 보니 딱 해야 할 것들이 있는 와중에 정서를 나누는 부분이 있다. 쉽지 않은데 선배님 덕분에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연기가 힘들 때가 있어요.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열심히 하고 싶다가도 도망가고 싶고. 늘 좋긴 했지만 다 좋진 않았겠죠. 저도 사람인지라 감당이 안 되기도 하고 겉보기엔 좋아 보여도 도망가고 싶었을 때가 있었어요. 이번 부산행을 찍으면서 ‘내가 해내고 있구나’라고 생각됐어요. 설렜고 잘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죠.”
2004년 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연기 경력이 12년이지만 그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 정유미는 “‘부산행’은 저한테 의미가 남다르다. 데뷔하는 기분도 들고… 이제 진짜 알 것 같다”며 “흥행의 여부와 관계없이 ‘이 많은 배우 중에 나라는 작은 사람이 어떤 배우가 돼야 할까’라는 고민을 진지하게 생각해주는 계기가 된 영화”라고 설명했다.
배우가 자신만의 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배우에게 있어 중요한 일이다. 그는 하얀 스케치북 같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정유미만의 캐릭터가 완성된다. 정유미는 “연기 변신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나고 싶다. 비슷한 이야기라도 배우와 감독님에 따라 다르다”며 “변신을 안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확’ 변신했다고 하기엔 부족하다.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전했다.
“주인공이 아닌 조연, 단역으로 잠깐 나오더라도 의미 있는 작품 한 켠에 있을 수 있다면 그것도 고마울 것 같아요. 좋은 이야기를 만나면 좋겠죠. 이야기가 좋아야 작품이 돋보이는 거니까 저만 돋보이는 건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