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부상으로 한때 은퇴 고려… 시련 딛고 피겨 전설 등극

[뉴스천지=박상현 객원기자] 지난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자메이카 봅슬레이 대표팀을 주인공으로 한 코미디 영화 ‘쿨 러닝’이 있다. 하지만 여기 영화업계에게 또 하나의 동계 스포츠 영화 소재를 소개한다. 바로 ‘어메이징 연아’ 스토리다.

김연아가 지난 26일(한국시간)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 콜리세움에서 끝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228.56점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당당하게 금메달을 목에 걸며 피겨 그랑프리, 대륙 선수권, 세계 선수권에 이어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의 4대 피겨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그랜드 슬램’을 이뤄냈다.

김연아의 ‘그랜드 슬램’은 여자 선수 가운데 그 아무도 해내지 못한 대기록으로 김연아가 우상으로 삼고 있는 미셸 콴(미국)조차도 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김연아의 성공 스토리만으로는 영화가 되지 않는다. 그녀의 성공 뒤에는 온갖 아픔과 시련이 있고 숨은 얘기도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 피겨는 다른 나라에 비해 척박하기 그지없다. 주니어 세계 선수권과 그랑프리 시리즈 및 그랑프리 파이널 등 온갖 세계 대회 우승 기록은 김연아가 처음이다. 일찌감치 피겨 스케이팅에 관심을 갖고 관련 잡지까지 있는 옆나라 일본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뒤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이런 나라에서 ‘그랜드 슬램’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한편의 영화 소재다.

7살 때 친척이 준 중고 피겨 부츠를 신고 입문한 김연아가 세계 정상에 서기까지는 너무나 힘든 여정이었다. 이런 힘든 여정에도 불구하고 김연아가 강해진 데에는 동갑내기 아사다 마오(일본)이라는 라이벌이 있었다.

주니어 때만 해도 김연아는 “뭐 저런 애가 다 있나”할 정도로 아사다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어머니 박미희 씨도 “우리 연아도 잘하긴 하는데 일본에 아사다라고 너무나 잘하는 아이가 있어요. 감히 넘어서기도 힘들 정도예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사다 마오는 역시 피겨 선수였던 아사다 마이의 동생으로 그 누구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의 소유자로 언니의 기량을 일찌감치 뛰어넘었다. 이 때문에 2006년 토리노 대회에 이어 2010년 밴쿠버 대회까지 일본이 2회 연속 금메달을 따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고 그 주인공은 단연 아사다였다.

하지만 김연아의 기량은 이때부터 성장하기 시작했다. 김연아 역시 그 누구보다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2004/05 시즌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아사다에 밀려 준우승에 그쳤던 김연아는 2005/06 시즌에는 아사다를 2위로 밀어내고 당당하게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아사다와 김연아 모두 시니어 무대에서 뛰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다.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김연아가 우세를 보였던 반면 세계 선수권에서는 아사다와 안도 미키(23, 일본)에 밀려 3위에 그치곤 했다.

게다가 2006년에는 스케이트 부츠가 맞지 않아 심각하게 은퇴를 고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대로 맞는 부츠를 찾으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김연아에게 또 다른 시련은 고질적인 부상이었다. 고관절과 무릎 부상에 시달렸던 김연아는 진통제를 맞고 경기에 출전하는 투혼을 보이곤 했다.

김연아의 잠재력이 급격하게 터진 것은 1984년과 1988년 동계 올림픽에서 피겨 스케이팅 남자 싱글 2회 연속 은메달을 땄던 브라이언 오서(47) 코치를 만나면서부터였다.

40대 중반이 되도록 지도자로 입문하지 않고 프로 선수로 활약했던 오서 코치는 김연아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곧바로 선수 생활을 완전히 접고 코치의 생활로 들어섰다. 오서 코치의 첫 제자이자 수제자가 바로 김연아다.

오서 코치가 김연아를 흔쾌히 맡은 것은 그녀가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낼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 때문이었다. 오서 코치는 현역 시절 ‘미스터 트리플 악셀’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남자의 강자였지만 올림픽 금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런 한을 김연아를 통해 풀고자 했던 것이다.

김연아와 오서 코치의 만남은 그야말로 환상이었고 그랑프리 시리즈와 파이널을 석권하는 등 우승 기록을 계속 늘려갔다. 고양에서 2008년에 벌어졌던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국내 팬들의 열렬한 응원에서 오는 중압감과 시차적응 실패 등으로 아사다에게 우승을 넘겨주긴 했지만 2009년 4대륙 선수권부터 그랑프리 파이널까지 출전한 5개 대회에서 모두 정상에 올랐고 올림픽 정상까지 밟으며 피겨 전설이 됐다.

이에 비해 아사다는 2009/10 피겨 그랑프리 시리즈 1차 대회에서 김연아와 맞붙었지만 최악의 부진을 보였고 끝내 그랑프리 파이널에 나가지도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와신상담 끝에 4대륙 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했지만 결국 또 다시 김연아에게 무릎을 꿇었다.

아사다 역시 김연아처럼 오랜 기간 올림픽 금메달을 꿈꿔 왔지만 훌륭한 기량을 갖고도 김연아에 밀려 ‘영원한 2인자’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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