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싸움

이상국(1946~  )

나는 감춘 것도 별로 없고 그냥 사는 게 일인 사람인데 우리 동네 감나무집 개는 내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짖는다.
나는 되도록이면 그 집을 피해 다니거나 조심스럽게 지나가지만 매번 이제 됐다 싶은 지점에서 그가 담벼락을 무너뜨릴 듯 짖어대기 시작하면 뭔가 또 들킨 것 같다.
 
나는 쓰레기 분리수거도 철저히 하고 적십자회비도 제때 내며 법대로 사는 사람인데 아무래도 그는 내 속의 누군가를 아는 것 같다.
그깟 개를 상대로 분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겁을 먹는 건 아니다. 그래도 그것이 무엇이든 나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언짢은 일이다.

 

[시평]

지금은 웬만한 도시는 대부분의 주거환경이 아파트로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일반주택이 줄을 지어 서있는 동네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어느 집 앞을 지나다가 보면, 그 집안에 있는 커다란 개가 갑자기 짖어대고, 그래서 놀라는, 그런 일을 종종 당하곤 했다. 그렇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내가 지나가면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는 언제고 짖어대는 그 놈. 그런 모양이 귀찮아 그 집 앞을 되도록 조심조심 지나지만, 언제 알아채고는 담장을 허물 듯이 짖어대는 그 놈. 참으로 그 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세상에는 어쩌면 이렇듯 느닷없이 만나는 봉변들이 없지 않아 있다. 느닷없이 만나는 봉변, 어떻게 해볼 요량도 없는 그런 느닷없는 봉변. 그래서 아애 상대조차 하지 말아야 할 봉변. 이런 봉변을 당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내가 무슨 잘못을 한 듯한 생각이 든다.

쓰레기 분리수거도 철저히 하고 적십자회비도 제때 내며, 법대로 사는 모범적인 사람이지만, 이런 봉변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드는, 그래서 자신을 한번 뒤돌아본다. 나도 모르는 나의 잘못이 있어, 그 잘못을 누군지도 모르는 어떤 사람이 소상히 들여다보고 있는 듯하여, 왠지 주눅이 들고 언짢아진다. 아, 아 우리는 근원적으로 이렇듯 자신도 모르는 무슨 죄를 하나쯤은 갖고 사는 것은 아닌가. 아마 그런지 모르겠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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