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반포 570돌] ③시·편지·소설… 백성들 한글로 ‘자연과 삶’ 노래하다
[한글 반포 570돌] ③시·편지·소설… 백성들 한글로 ‘자연과 삶’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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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말이 중국과 서로 달라 한자로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니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할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위하여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 세종실록 中 -

 

▲ 율곡 이이가 황해도 해주 고산면에 있는 석담구곡(石潭九曲)의 경치를 읊은 ‘고산구곡가’를 그림으로 옮긴 ‘고산구곡도’ (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살아서 서로 다시 보면 끝이 날까마는 기약하지 못하겠네. 그리워하지 말고 편안히 계시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그해 겨울, 학봉 김성일은 ‘경상우도감사(慶尙右道監司)’로 부임해 임지(任地)인 진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잠시 경남 산음현현 산청에 머문다.

그때 남편을 애타게 걱정하는 아내가 떠올랐을까. 그는 안동 본가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전시로 ‘안절부절’할 듯 한 아내. 그는 ‘그리워도 말고 편안히 있으라’고 글을 적는다. ‘장모 모시고 과세(過歲, 설을 쇰)를 잘하소. 자식들에게 편지 쓰지 못하겠네. 잘 있으라고 하소’라는 애틋한 마음도 담는다.

▲ 시아버지가 해산날이 다가온 며느리에게 쓴 편지.(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

편지에 마음 담다

한글 창제 후, 백성들은 한글편지를 썼다. 편지는 마음을 전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사실 그 전까지 편지 등 문학 활동은 상층계급만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한글 창제 후, 분위기는 완전히 바뀐다. 아버지가 딸에게, 딸이 친정어머니에게 마음을 전했다. 그 애틋함은 글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당신이 늘 나에게 말하기를, 둘이 함께 머리가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하셨는데 어찌하여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생략)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생에서는 잊을 수가 없으니 어떻게 해도 슬픈 마음이 끝이 없어요.’

이 편지에는 젊은 날 세상을 먼저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마음이 묻어 있다. 그 그리움과 애절한 사랑은 글만 읽었을 뿐인데 느껴질 정도다.

해산날이 가까운 며느리에게 시아버지가 편지를 쓰기도 했다. ‘너 해산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나오니 마음이 어찌 잠시라도 잊었겠느냐. 비록 딸을 낳을지라도 서운해 말고 음식이나 착실히 먹고….’

▲ 한글로 작성돼 전해 내려온 청산별곡.(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

시조, 노래로 부르다

한글 덕분에 시조와 가사도 생생하게 전달됐다. 문학에서 시가는 노래로 불리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문자가 없으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변하거나 소멸된다. 한글은 이를 완전히 보완했다.

문학의 작가 층도 확대됐다. 그동안 자연과 삶을 노래하던 시조는 조선전기 사대부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국민 문학으로 발전하게 됐다. 한글이란 최고의 문자 덕분이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애 살어리랏다.’

이는 고려가요 중 하나인 ‘청산별곡’이다. 한 젊은이가 속세를 떠나 청산과 바닷가를 헤매며 자신의 비애를 노래한 내용을 담고 있다. 노랫가락은 ‘한 자 한 자’ 한글로 적혔다. 덕분에 조선시대는 물론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고산구곡도(高山九曲圖)’도 있다. 율곡 이이가 정계에서 물러나 은거했던 황해도 해주 고산면에 있는 석담구곡(石潭九曲)의 경치를 읊은 ‘고산구곡가’를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그림의 전체 구성은 왼편 제1곡에서 시작해 오른쪽 제9곡에 이르기까지 파노라마식으로 전개된다. 두루마리 위쪽에는 각 곡마다 3편의 시가 적혀 있다. 김수중이 한글로 쓴 이이의 ‘고산구곡가’가 먼저 나오고, 이를 송시열이 한문으로 번역한 시가 나온다. 또 김수항 등 9명에게 고산구곡가의 차운시(남이 지은 시의 운자를 따서 시를 짓게 함)를 짓게 해 그림과 함께 장정했다.

◆‘소설’ 재미에 빠지다

서사문학도 한글로 창작됐고 번역됐다. 한글소설의 창작과 번역은 상층문화와 하층문화의 확산과 교류에 영향을 미쳤다. 대중들이 즐겨 읽던 ‘춘향전’에는 ‘금 술잔의 좋은 술은 천 사람의 피’로 시작하는 한시가 삽입되기도 했다.

‘홍루몽(紅樓夢)’도 있다. 이는 청나라 조설근이 가씨·사씨·왕씨·설씨 등 네 가문의 영화와 몰락, 사랑에 관해 쓴 장편소설을 번역한 소설이다. 세계 최초의 완역본이자, 장서각(한국학 전문 도서관) 유일본이다. 원작이 길다보니 번역본도 120권이나 된다. 방대한 원전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풍부한 우리말 어휘의 활용을 보여주고 있다. 국어 연구 자료로도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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