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윤 행복한통일로 대표/을지대 겸임교수 

 

며칠 전 필자는 참으로 귀중한 경험을 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자신의 전 생애를 걸쳐 희생했던 전몰군경 유족분들 앞에서 강연을 하는 영광의 시간을 가졌다. 

주어진 시간의 강연이 끝나고 난 다음 처음 참가한 신입회원들의 인사가 이어졌는데, 필자의 어머니같은 연세의 여성분이 서른도 채 안된 꽃다운 나이로 홀로되어 삼남매를 훌륭히 키워주신 모친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이제 자신이 장녀로서 모친께서 수급하고 있던 아버지의 연금수령자가 되어 오늘 처음 이 자리에 오게 됐다고 눈물을 흘릴 때,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칠순 가까운 세월을 살아왔노라고 흐느낄 때,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은 아낌없이 같이 눈물을 쏟았다. 그 자리에 모인 보훈가족 대부분이 아버지의 얼굴을 모르고 살아왔음이리라.

모처럼 감격스러운 경험을 하고서 집으로 돌아올 즈음 뜻밖의 문자 하나가 날아왔는데, 신통히도 두 번의 감격을 주는 장문의 글이었다. 세상에 많이 회자됐던 내용이라고 하지만 이 자리에서 간략히 핵심적인 내용만 공유하고자 한다.

민간 항공기에 전사한 미군병사의 시신과 가족들이 탑승해 있었다. 기장은 게이트 도착 전에 잠시 비행기를 정차시킨 채 기내방송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알리고, 모든 탑승객들이 전사한 미군가족들이 먼저 내린 다음 절차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승객들이 자리에 앉아 대기해 줄 것을 요청한다. 다시 비행기는 안전하게 게이트에 정차하고 가족들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길 때 승객들 사이의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격려의 소리도 잊지 않았다. 비록 하나뿐인 귀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이었지만 당시의 상황은 미국인이라는 자부심과 아들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긍지의 순간이었음은 분명하였으리라.

모든 절차는 기존의 매뉴얼대로 진행되는 것이었지만, 민간 항공기의 기장이 보여준 행동과 승객들의 하나 된 마음은 누가 시켜서도, 매뉴얼에 나와 있는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자발적인 있는 그대로의 존경심이 그 같은 감동의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하니 정말이지 대단한 민족이고 국민들이 아닌가 싶다. 비록 흑백갈등의 정점을 치닫고 있고 총기사고나 불법이민 문제들로 그 어느 때보다 혼돈의 미국이지만,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우러나오는 전몰당사자와 그 유족들에 대한 존경심은 오늘과 내일의 미국을 만드는 힘의 원천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7월 27일 정전협정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보훈가족들을 대하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국민의 세금으로 그 아픔에 대한 보상은 충분히 받고 있고 각종 복지혜택의 수훈자 정도로 밖에 여기지는 않는지를 말이다.  

전쟁이 휴전했고 70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긴장을 품은 평화체제 속에 우리의 모습은 점차 전쟁의 상흔을 잊고 있으며, 급기야 안보마저 각종 님비적 발상 속에 허덕이고 있다.

100여년 전 노론, 소론, 벽파, 시파 등의 당파싸움으로 민중의 삶에 대해 외면했던 당시의 정치권과 대원군의 쇄국정치로 한 치 앞을 나가지 못했던 조선이 일본제국의 아침거리로 전락했던 바, 주변 열강들의 변함없는 패권주의에 맞서 한반도의 미래 100년을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100여년 전의 모습 그대로라면 운 좋은 미래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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