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이 사는 천상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그때부터 인간은 익힌 음식을 먹고, 어둠을 밝힐 수 있었다. 인간의 문명이 그렇게 시작됐다. 최고의 신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벌을 내렸다. 바위산에 묶어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게 하고 다시 간이 돋아나게 했다. 제우스는 자신의 앞날에 대해 말해 주고 용서를 빌면 풀어주겠다고 했지만, 프로메테우스는 거부했다.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에게는 동생 에피메테우스가 있었다. 제우스는 음악을 잘하고 미모까지 뛰어난 판도라를 내려 보냈다. 조심하라는 형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판도라와 넙죽 결혼을 했다. 에피메테우스는 집에 상자 하나를 두고 있었다.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고 남은 것들만 따로 모아 담아 놓은 것이다.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상자를 열서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호기심 강한 판도라는 듣지 않고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서 질병과 전쟁 등 인간에게 해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판도라가 깜짝 놀라 상자를 닫았다. 그 바람에 희망만은 상자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요즘 세상이 꼭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 같다. 차라리 듣지 않고 보지 않았으면 싶은 것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 고위 공직자가 국민을 우습게보고 막말을 하고, 지위와 권세를 이용해 재산을 불리고, 국민들을 위해 일하라고 뽑아 놓은 국회의원들은 밥그릇 싸움하느라 정신이 없다. 북한에서는 미사일을 쏘아대고, 사드로 온 나라가 소용돌이 치고 있다. 사고는 또 왜 그렇게 자주 터지는지.

신이 난 건 종편 등 방송이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사고 사건이 자꾸 터져 주어야 할 말이 생기고 방송 시간을 메울 수 있으니 말이다. 하루 종일 했던 말을 되풀이하며 악다구니처럼 말을 쏟아내는 것을 보면 그들 역시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있는 말 없는 말 지어내고 만들어내고 추측하면서 듣는 이 보는 이들의 눈과 귀를 아프게 하고 의심케 한다. 

내 탓이요 하고 책임지고 의연하게 나서는 사람도 없다. 사실이 아니라며 발뺌을 하고, 내 잘못이 아니니 결코 물러나지 않겠다하고, 개인의 잘못이니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능청을 떤다. 친박, 진박, 비박이네 하면서 싸우는 꼴도 역겹다. 족발집, 해장국집 원조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많이 배우고 돈 많고 권력 많고 스펙 좋다는 그들이 하는 짓이 그 모양이다. 제 눈의 들보는 보이지 않는지, 마이크 대놓고 호통 치는 모습도 꼴같잖다. 지방에서는 의장직을 두고 혈서를 썼다고도 한다. 조폭이 따로 없다.  

목숨을 걸고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프로메테우스는 없고, 제 모습에 반해 물속만 들여다보다 죽은 나르키소스들이 넘쳐난다. 국민들이야 뭐라 하든, 어차피 개 돼지들이긴 하지만, 잘나고 잘생긴 제 모습에 반한 나르키소스들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국민들 무서운 줄 모르는 탓이다. 국민들 무서운 줄 알게 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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