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시론] 터키 군부 쿠데타 ‘6시간 천하’가 남긴 교훈
[천지일보 시론] 터키 군부 쿠데타 ‘6시간 천하’가 남긴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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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太初)라는 말이 있다. 인류 역사는 무엇 때문에 태초에 시작됐으며, 또 어떻게 흘러 왔으며, 흘러가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 유럽 속의 중동국가 터키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다. 터키는 ‘터키의 국부’라 일컬음을 받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1881~1938)에 의해 오스만 제국의 전제주의를 무너뜨리고 중동 이슬람국가 즉, 90% 이상이 무슬림인 나라이면서도 이슬람과 민주주의가 공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향을 제시하며 세속주의(정교 분리)와 함께 서구식 민주주의 국가를 탄생시킨 중동국가 중 유일한 나라며, 이는 ‘유럽 속 중동국가’라는 닉네임을 갖게 한 이유가 됐다. 물론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은 그의 개혁정책이 이슬람정신을 손상시키는 것이라며 절대적으로 비난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무스타파에 이어 13년 동안 터키를 실질적으로 통치해 온 강경 무슬림인 레제프 나이이프 에르도안 현 대통령에 의해 세속주의가 그 빛을 잃기 시작했으며, 사실상 모든 정책 방향에 있어서도 이슬람주의로 기우는 종교적 편향이 나타나기 시작한 지 오래 됐다. 시리아 내전으로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 간의 설전에서도, 확인된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푸틴은 에르도안을 향해 IS와 내통하고 있다고 한 발언도 왠지 주목해 볼만한 대목이다.

이러한 편향성에 대해 신흥 터키의 아버지라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의 정신을 지지해 오던 군부는 늘 에르도안 대통령에 정치적 제동을 걸어왔으며, 금번 ‘6시간 천하’ 군부 쿠데타 역시 같은 맥락에서라 볼 수 있다. 이처럼 도도하게 흐르는 인류의 역사와 국가 간의 국제 관계 속에는 늘 종교적 함수관계가 깃들어 있기에 종교를 모르고 세계의 정세를 이해한다는 자체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또 다른 쪽의 사정을 살펴보자. 초강대국 미국의 대선이 4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민주당 후보 힐러리, 공화당 후보 트럼프의 초접전이 예상되면서 관심가는 대목이 있다. 다문화 다종교 다민족 등 더불어 살아가는 합리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미국에서 금번 대통령에 출마한 두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 성향이 뚜렷하게 갈려져 나타나는 보고서가 관심을 끈다.

크리스천포스트가 최근 퓨리서치센터 보고서를 인용해 신앙의 유형과 유무에 따라 갈리는 유권자 표심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복음주의권 유권자들의 80%가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반면 자신의 종교가 없거나 ‘무신론’ ‘영지주의’라고 밝힌 유권자들의 67%가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 이 보고서는 “백인 복음주의 개신교인들과 무신론자들의 투표는 2016년 대선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많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트럼프에 비판적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그에 대한 기독교계의 지지는 매우 견고하다”고 밝혔다. 결국 금번 미국 대선을 통해 나타날 예측 가능한 현상은 종교적 편향이며, 이러한 종교 편향적 의식은 인종주의와 함께 이기주의와 민족주의를 견인하며 혼돈한 미래를 예측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현상은 이미 근대국가의 대부격인 영국에서 브렉시트를 통해 가시화됐으며, 북유럽과 한반도에 일고 있는 신 냉전구도와 함께 일본의 전쟁 가능한 나라 만들기를 정당화 시키는 데 빌미를 주게 될 것이며,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에 의해 추진되는 민족주의의 부활은 세계를 자극시키게 될 것이며, 결국 세계는 종교의 본질을 왜곡시키면서 그릇된 종교적 이념과 가치관의 충돌로 인해 대혼돈과 혼란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세계사를 움직이는 근본에는 바로 종교라는 이념적 갈등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이 같은 종교적 갈등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헌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못 박고 있으며, 나아가 터키와 마찬가지로 세속주의 즉,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하는 대표적 나라다(헌법 제20조 1, 2항). 하지만 헌법을 가장 잘 준수해야 할 정치·종교 지도자들부터 앞장서 법질서를 무너뜨리는 대표적 나라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이 가능한 것은 바로 종교가 본질을 떠나 정치 권력화되고 돈과 명예를 좇으며 세속의 길을 걷기 때문이다. 정치는 이같이 부패하고 타락한 종교를 활용해 자신들의 권력유지와 찬탈에 악용하게 되니 상호 필요충분조건이 돼 신앙인이 국민이며, 국민이 신앙인인 이 나라는 방향을 잃고 떠다니는 바다 위의 배와 같은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오늘을 정확히 진단할 때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것이다. 자고 나면 터지는 종교 지도자들의 부패와 타락성, 나아가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과 부패는 물론 막말 논란 이면에는 이같은 종교적 본질의 왜곡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면 지나간 시대에 매이지 말고 도래한 새 시대와 함께 종교의 본질부터 되찾는 종교회복의 역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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