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산에 가야 범을 잡고, 강에 가야 고기를 잡지.”

속담이지만 상식이다. 정치권에서 논란이 된 모바일투표도 마찬가지다. 친박·비박 혹은 특정세력 유·불리를 떠나 원칙을 벗어난 모바일투표는 없애야 한다. 선거는 국민적 합의에 바탕한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국민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제도다. 헌법에는 선거의 기본원칙으로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 원칙이 규정돼 있다. 누구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1인 1표제다. 선관위가 엄정하게 관리하는 투표소에 유권자가 직접 방문해 투표한다. 자유로운 의사표시를 방해할 위험이 큰 호명·거수·기립·기명 등을 통한 공개선거는 허용되지 않는다. 모바일과 정보기술(IT)은 노년층이 잘 이용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나 재산 등 자격요건에 제한이 없어야 하는 보통선거 원칙에 위배돼 불공정하다. 중복투표나 대리투표, 동원투표가 이뤄지면 평등선거 및 직접선거 원칙에 위배된다. 지인들의 개인정보와 휴대전화를 이용해 한 명이 여러 표를 찍을 수 있다. 사무실이나 휴게실, 지하철 등 공개된 생활공간에서 드러내놓고 투표하면 비밀선거 원칙에도 어긋난다. 헌법 위반이다.

새누리당은 내달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모바일 투표를 도입하지 않는다. 여야 모두 모바일투표는 완전히 용도폐기해야 한다. 정치선진국인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도 원래 투표방식대로 했다. 일부 새누리당 의원은 직장 업무, 휴가 등으로 인해 현장투표에 참여하지 못하는 젊은 층의 투표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모바일투표 도입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모바일은 부정선거와 역선택에 이용된다. 치명적인 허점이다. 다시는 꺼내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다.

통합진보당이 당 해체 전 모바일투표를 한 적이 있다. 이때 가짜명부를 이용해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전화번호로 투표한 사실이 드러났다. 2012년 민주통합당은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모바일투표의 위력을 앞세운 친노 이해찬 후보가 비노 김한길 후보에 역전승을 거뒀다. 대의원·현장투표에서 지고도 모바일투표로 ‘당심(黨心)’을 누르며 대표직을 차지했다. 그해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친노 문재인 후보가 비노 손학규·정세균 후보 등을 따돌리고 당선됐다. 당시 당 대의원 투표에서는 손학규 후보가 선두를 달렸으나 모바일투표에서 문재인 후보에 져 역전됐다. ‘당심’과 ‘모바일심(心)’이 달랐다. 역선택과 술수, 정치공학의 결과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당시 여권에서는 손 후보보다 문 후보의 당선을 내심 희망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던 때였다. 민주정치는 정당정치다. 당원과 대의원이 중심이 돼야 한다. 당심이 고스란히 위정자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면 여론조사 반영제도도 폐기해야 한다. 대통령선거가 내년이다. 부정선거로 오염되기 쉬운 모바일투표와 당심을 왜곡하는 여론지지율 반영제도가 꼭 배제되길 바란다.

막말논란에도 불구,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후보 경선에서 국민의 가려운 곳을 속 시원히 긁어주며 대통령 후보 공식지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세월호 사고, 메르스 사태에 이어 올해 사드배치 논란, 현직 검사장 주식뇌물 사건 등으로 많은 국민들이 낭패감과 박탈감을 가슴에 안으며 찜찜해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모든 후보가 동의한 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만 해도 그렇다. 다음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인데도 아직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

여전히 한국이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라고 믿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특별한 재산이 없다면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대부분 떳떳한 중산층으로 살기도 어렵다고들 여긴다. 부(富)의 대물림과 소득 불평등으로 사회가 쪼개지고 찢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의 분노는 무엇인가. 이는 소수의 ‘금수저’가 절대다수의 ‘흙수저’를 돈과 권력으로 지배하는 현실, 재벌과 기득권세력에 치우쳐진 불공정한 분배에 대한 것이 가장 크다. 문제는 국민적 합의 없는 집단이기주의에 의한 왜곡이다.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각종 사회시스템도 왜곡해선 안 된다. 누구라도 민심을, 법을, 순수한 희망을, 민초들의 때 묻지 않은 꿈을 탐욕스러운 손에 쥐고 장난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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