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

친명사대(親明事大)를 국시로 삼은 조선은 사병을 혁파하고 국방을 명나라에 의존하는 잘못을 범했다. 정변을 우려한 나머지 군사조직의 해체한 것이었으나 조선은 약체국가로 전락하여 5백년 동안 미증유의 전란을 여러 차례 겪어야 했다.

별기군 30만을 자랑했던 군사력은 일시에 내란 정도나 막을 수 있는 나라로 전락했다. 선각자 율곡이 10만 양병설을 주장하여 조정을 경각시키려 했던 노력은 동·서 양인들의 파쟁적 이전투구로 실현되지 못했다. 이웃이 점점 강성해지는 것을 잊고 자리다툼으로 세월을 보냈다. 외적보다는 내부의 적에 치중하여 모함과 공격에 더 열중했다.

명나라의 명운이 점점 기울어지면서 일본의 대륙 진출 야욕은 불타올랐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을 제패하고 분출된 군사들의 사기를 써먹을 데를 찾고 있었다. 그것은 한반도를 침공하는 것이었다. 군사를 조련하고 공공연히 명나라를 친다고 호언했다.

일본은 조선 침공 전에 군사편제를 전투부대와 특수부대로 이원화시켰다. 3개의 전투부대는 빠르게 북진시키고 6개의 특수부대는 후방에서 특별한 임무를 수행토록 했다. 특수부대는 도서부, 금속부, 공예부, 포로부, 보물부 등으로 짜여졌으며 조선의 각종 자원과 보물을 약탈하여 본국으로 가져가는 것이 주임무였던 것이다.

경남 웅천 가마 화기에 그을려진 막사발(井戶茶碗)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바쳐졌다. 이 막사발은 신주단지처럼 모셔져 대대로 전해져 왔으며 현재 수백억을 호가하는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어디 막사발뿐인가.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고려불화와 사암의 불교유산은 거의 약탈당했다. 도성안의 많은 건축물은 불타고 잿더미로 변했다. 무엇이 남았겠는가. 서애 류성룡은 징비록에다 ‘시체와 백성들의 절규와 곡성만이 들렸을 뿐’이라고 기록한다.

이런 쓰라린 경험을 겪고도 조선은 각성하지 못했다. 조정을 지배하는 사류들은 공리공론에 침잠하여 당파로 세월을 보냈다. 만주의 신흥세력 청은 말갈의 후예인 여진으로 본래는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기던 부족이었다. 조선은 명에 대한 의리에 치중한 나머지 여진에게 철저히 유린되는 치욕을 맛보아야 했다.

청나라를 대국으로 섬기던 시기에도 조선은 노론, 소론으로 나뉘어 국방과 안보는 중시되지 않았다. 실학은 사문난적으로, 양반계급의 수탈과 탐관풍조가 나라를 병들게 했다. 그 결과 조선은 근세에 이르러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했으며 일본이 패망함으로써 겨우 독립을 얻었다. 그러나 지금 한반도는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으로 동족인 북한과는 휴전중이다.

북한의 핵 위협, 일본 자위대의 외국파견 개헌추진, 미-중 간의 갈등고조… 지금 한반도의 안보 시계는 어떤가. 미국 대선에서는 미군철수를 부르짖는 공화당의 트럼프가 예측불허의 기염을 토하고 있다. 한반도의 안보 앞날은 어둡기만 하다.

북한 핵을 요격하는 사드배치만 해도 국론 통일이 안 되고 있다. 전국 어느 지역도 자신들의 땅에는 배치해서는 안 된다고 항변한다. 나라에 안보는 없고 님비만이 우선된다면 국가의 장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다음번 선거에서 당선이 안 되더라도, 달걀 세례를 맞더라도, 와이셔츠가 찢기는 한이 있어도 올바른 소리를 하는 정치인이 왜 없는가. 지금 이 시국을 임진전쟁 이전의 정세와 근세 열강에 둘러싸인 한말과 매우 흡사하다고 개탄하는 이들이 많다.

한반도의 굳건한 안보는 국민들이 일치 단합하는 데 있다. 국가의 안보가 가장 우선이라는 합의가 또 중요하다. 국방력의 자립은 이제 민족생존과도 직결되고 있다. 이 시대 국가를 운영하는 지도자들이 모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또 미증유의 환난을 당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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