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연합뉴스)

경제성장률 2%대 고착화
금융위기 후 성장률 급락
재정보강에도 경기 위축
올해 물가목표 달성 못 해
금리 내려도 저물가 기조
日 장기불황 닮아가는 韓

[천지일보=임태경 기자] 백약이 무효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한반도 사드 배치, 기업 구조조정 여파 등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대형 악재가 꼬리를 물고 있는 상황에서 급기야 한국은행이 석 달 만에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7%로 내려 잡았다. 내년에도 경제성장률이 2.9% 오를 것으로 예측해 3%대 이상 성장의 기대를 접은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꺼진 경제 엔진을 살리기 위해 매년 대규모 재정을 동원하고 있지만, 성장률은 2%대에서 머물며 저성장 추세가 고착화되고 있다. 물가안정 목표 달성도 실패해 저물가 현상이 지속되자 일각에선 ‘디플레이션 덫’에 걸려들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이에 한국 경제가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의 장기 불황의 터널로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저성장 늪’에 빠진 韓경제

경제 전반에 활력이 떨어지면서 우리 경제가 무기력증에 빠졌다.

최근 5년 동안 한국 경제는 2014년(3.3%)을 제외하고 줄곧 2%대의 ‘저성장 늪’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 충격에서 벗어난 직후인 2010년 6.5%의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유럽발 재정위기에 발목이 잡히면서 2011년 3.7%, 2012년 2.3%, 2013년 2.9% 등 2%대 성장률에 머물렀다. 2014년 3%대로 올라섰지만, 지난해 다시 2.6%로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1998~2007년) 평균 4.9%에서 금융위기 이후(2008~2015년)에는 평균 3.1%로 하락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이 글로벌 경제의 회복 지연에 따른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점점 긍정적인 경기 신호가 소멸되는 ‘늪지형’ 불황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우리나라는 2008넌 금융위기와 2010년 재정위기를 겪은 이후부터 이런 늪지형 경기 흐름을 보이고 있다. 특히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가 위축되면서 전반적인 생산활동이 떨어져 불황의 폭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이에 정부와 한국은행은 경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추가경정편성(추경)과 기준금리 인하 등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은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1.25%로 내렸고 정부도 ‘10조원+α’ 규모의 추경을 포함해 20조원 이상의 재정보강에 나서기로 했다.

문제는 정부와 한은의 공격적인 통화정책에도 새로 제시한 성장률 전망치 달성이 쉽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한은의 최근 1년간 성장률 전망치를 보면 지난해 10월 3.2%, 올해 1월 3.0%, 4월 2.8%, 7월 2.7% 총 네 차례 하향 조정했다. 3%대의 목표를 유지하던 정부마저 지난달 전망치를 2.8%로 낮춰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의 경기둔화와 국제유가 하락으로 수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성장률 하락은 예견됐다. 브렉시트와 한반도 사드 배치 등 국내 성장을 제약하는 리스크가 사방에 존재해 성장률 전망치 달성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하반기 경기 상황은 더 암울하다. 개별소비세 인하가 종료되고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소비는 더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까지 본격화하면 대규모 실업 발생으로 가뜩이나 위축된 가계는 ‘소득절벽’에 직면할 수 있다. 여기에 기업들의 투자심리 위축으로 설비투자를 꺼리면서 저성장 유탄에 맞을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日 잃어버린 20년’ 따라가는 韓경제

“당분간은 경제성장세가 완만한 가운데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을 하회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통화정책의 완화기조를 유지해 나갈 방침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4일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2.0%)를 크게 밑돈 이유에 대해 사상 첫 물가 설명회를 열고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12월 한은은 2018년까지 달성할 중기물가안정목표를 연 2.0%로 설정했다. 그러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월 0.8%, 2월 1.3% 기록한 후 3월과 4월 연속으로 1.0%대를 유지했다가 지난 5월(0.8%) 다시 0%대로 떨어졌다. 지난 6개월간 한 번도 물가설명회 허용범위인 1.5%를 넘어서지 못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도 0.7% 올라 통계청이 물가를 집계하기 시작한 1965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바 있다.

이처럼 저물가가 장기간 지속되면 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줄이고 이는 다시 소비침체로 이어져 경제 전체가 악순환을 그린다. 저성장 기조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저물가마저 엄습한 우리 경제가 ‘D 공포’, 곧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이주열 총재는 “저물가 상황이 지속되면 기대인플레이션 하락으로 임금상승률이 둔화되고 경제심리가 위축돼 소비자물가가 추가 하락을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까지 이런 현상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 총재는 향후 유가하락, 세계경제의 점진적 회복 등에 힘입어 물가 하락압력이 완화돼 하반기부터 물가가 1%대 중반으로 오르고, 내년 상반기에는 2.0%대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주열 총재의 해명에도 한국 경제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금리가 내려가면 물가가 오른다는 통설은 좀처럼 작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 금통위는 지난해 3월 금리를 사상 처음 1.75%로 전격 인하했고, 6월에 다시 1.50%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1년만인 지난달 9일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1.25%까지 끌어내렸지만, 물가상승률은 전망치를 크게 밑돌았다.

 

문제는 한국의 최근 경기 흐름이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잃어버린 20년’으로 평가받는 일본 디플레이션의 가장 큰 원인은 저출산과 고령화의 그늘로 개인 소비가 침체해 지속성장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베 정권의 아베노믹스 플랜 중 가장 강조한 것이 ‘디플레이션 탈출’이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아베노믹스의 상징인 대규모 재정정책을 동원해 디플레이션 탈출을 시도했지만 닫힌 가계 지갑을 여는 데는 실패, 지금도 디플레이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12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을 만나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는 속도를 높이겠다”고 말할 정도로 일본의 디플레이션 탈출은 시급한 문제이다.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아베 정권은 최소 10조엔(약 110조원)대 경제 대책을 마련했지만 소비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이 나오지 않는 한 디플레이션 탈출이 쉽지 않다는 전망이다.

한국 경제가 디플레에션으로 인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저성장‧저물가의 덫을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부양으로 경기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산업 전반에 걸친 구조개혁으로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가계 소비를 늘리고 기업 투자가 활성화할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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