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 앞에 있는 해태상은 궁궐 입구를 수호한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숨 가쁘게 돌아가는 대도시. 그 속에 유난히 ‘느릿느릿’ 시간이 흐르는 곳이 있다. 바로 궁궐(宮闕)이다.

1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 고층 빌딩 사이로 고즈넉한 조선의 옛 수도가 고개를 든다. 그 길 위에서 600여년 전 서울을 마주했다. 서울에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등 다섯 개의 궁궐이 있다. 경복궁은 1395년에 지어진 조선 최초의 궁궐이다. 경복(景福)은 ‘큰 복을 누리리라’는 뜻이다.

경복궁의 절경은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백악산, 인왕산을 병풍 삼아 우뚝 솟아있는 경복궁은 자연 그 자체였다.

경복궁은 두 차례의 수난을 겪었다. 첫 번째는 ‘임진왜란(1592년)’이다. 이때 경복궁은 주변 궁과 함께 전소됐다. 하지만 다른 궁궐과 달리, 경복궁은 270여년간 복구되지 못하고 방치됐다. 그러다 흥선대원군 때,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하지만 또다시 수난을 겪는다.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다. 이 당시 10%를 제외한 나머지 건축물이 철저히 파괴된다. 건물이 팔리기도 한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경복궁은 궁궐로서 그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다 1990년부터 경복궁 복원사업이 시작된다. 영재교, 소주방, 건청궁 등 주요 정각을 다시 지어 현재 25%까지 복원됐다. 2035년쯤엔 50%까지 복원될 예정이다.

하나둘씩 눈뜨고 있는 경복궁의 옛 모습. 그 조선왕조 숨결을 따라 경복궁의 시간 속으로 거닐어보자.

▲ 근정전 앞마당에 ‘품계석’이 줄지어 서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공식행사 치르던 ‘근정전’

“주상전하 납시오!”

광화문, 흥례문, 근정문을 거치면 정면에 ‘근정전’이 나타난다. 근정(勤政)은 ‘부지런하게 정치하라’는 뜻이다. 근정전은 국가의 중대의식을 거행하던 곳으로, 궐 안의 수많은 전각 중 으뜸으로 꼽히는 ‘법전’이다. 근정전 지붕의 처마선은 마치 봉황이 날개를 펼치듯 장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주변 산세와 어우러져 살아 숨 쉬는 듯하다.

근정전 안 가운데에는 임금이 앉던 자리 즉, ‘용상’이 있다. 그 뒤에는 ‘일월오봉도(일월오악도)’가 있다. 이 그림은 해와 달을 통해 음양(양-하늘, 음-땅)의 조화를 묘사했다. 다섯 봉우리는 오행(오방위)을 나타낸 것으로, 우주 원리를 그림 속에 ‘폭’ 담아 놓았다.

▲ 경복궁 근정전 안에 있는 ‘일월오봉도’. 왕의 어좌(용상) 뒤에 있으며, 천지인 사상이 담겨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일월오봉도에는 하늘, 땅, 사람 즉 ‘천지인’ 사상이 담겨있다. ‘임금왕(王)’을 생각했을 때, 가로 세 개의 선은 천지를 의미한다. 하지만 천지만을 표현했기 때문에 완성된 그림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늘의 이치를 깨달은 한 사람이 출현해 그림 앞에 서야 완벽한 일월오봉도의 그림이 완성(三+丨=王)된다.

조정에서 내려다보면 한가운데에 볼록 튀어나온 길이 있다. ‘임금님만 다닐 수 있는 길’로서 ‘어도(御道)’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이 이 길을 밟을 경우 곤장 80대를 맞았다고 한다.

어도의 양쪽에는 비석 모양의 열두 개의 돌이 각각 있다. ‘품계석’이다. 신하들은 자신의 직급이 적힌 비석을 중심으로 줄을 섰다. 어도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문반(학자 출신), 한쪽에는 무반(군인 출신)이 섰다. 문반과 무반을 합친 말이 바로 ‘양반’이다.

경복궁을 오르는 난간에는 동물 조각상이 많다. 우선, 동서남북을 수호하는 사방신(청룡, 백호, 주작, 현무)이 있다. 또 십이지신도 있다. 하지만 개, 돼지는 빠졌다. 그 이유가 문헌적으로 남아 있지는 않다. 다만 기독교 성경에서 개, 돼지는 신을 배반하는 동물로 표현되기도 한다.

◆왕의 공간 ‘사정전’

‘매일 새벽 3~5시 왕과 신하 만남.’

사정전(思政殿)은 왕의 공식적 집무실인 편전이다. 왕이 정사에 임할 때 ‘깊이 생각해서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매일 아침 업무보고와 회의, 국정 세미나인 경연 등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왕과 신하가 만나는 ‘상참(常參)’이라는 어전회의는 새벽 3~5시에 열렸다. 상참을 좋아했던 왕은 세종대왕이다. 세종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상참에 참석했다고 한다.

하루는 우의정 류관이 “주상께서 매일 오셔서 조회하시는 게 힘드실 텐데 하루걸러 이틀에 한 번 씩 하면 어떠하온지요?”라고 여쭌다. 세종은 “우의정께서 매일 입궐하기 힘드신 가 본데, 그런 말씀하시기 위해 오시려거든 다른 사람을 보내시오”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 왕이 휴식을 취했던 경복궁 강녕전. ⓒ천지일보(뉴스천지)

◆왕과 왕비의 침전 ‘강녕전, 교태전’

“전하, 어서 침수 드시옵소서.”

강녕전과 교태전은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는 침전이다. 강녕전은 왕이, 교태전은 왕비가 사용했다. 보통 ‘임금과 왕비가 부부이니 같은 방을 쓰겠구나’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각각 다른 곳을 사용했다.

강녕전에서 왕은 독서와 휴식 등 일상생활뿐 아니라 신하와 은밀한 정무를 보기도 했다. 강녕전은 정(井)자 모양으로, 그 가운데를 왕이 사용했고 작은 방들에는 상궁과 나인이 24시간 대기하고 있었다. 왕을 보호하기 위해서지만, 왕은 더 자유로운 생활을 원치 않았을까.

◆대비마마 거했던 ‘자경전’

“어마마마, 만수무강하옵소서.”

아름다운 꽃담이 있는 곳은 바로 ‘자경전(慈慶殿)’이다. 이곳은 대왕대비가 거처했던 침전이다. 1865년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만들어졌다. 이후 화재로 소실됐다가 1888년(고종 25년) 중건됐다.

이곳은 주위 다른 건물과 분위기가 확 다르다. 왕실 어르신이 사시는 곳이니 담에 장식된 무늬 하나도 깊은 의미가 있다. ‘만(萬), 수(壽), 복(福), 강(彊), 녕(寧)’ 등 어머니를 향한 임금의 효심이 잘 배어 있다. 뒤뜰에 가면 큰 굴뚝이 있는데, 대비마마의 장수를 비는 십장생(十長生)이 새겨져 있다.

▲ 근정전 서쪽의 넓은 연못 위에 경회루가 웅장하게 서 있다.ⓒ천지일보(뉴스천지)

◆은은한 멋 ‘경회루’

‘동그라미는 하늘, 네모는 땅.’

근정전 서쪽의 넓은 연못. 그 위에는 경회루가 웅장하게 서 있다. 경회(慶會)는 경사가 모이기를 바라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대 누각이다. 과거 왕은 이곳에서 신하나 외국 사신을 맞아 연회를 베풀었다. 사시사철 자연과 어우러지는 은은한 멋. 외국 사신도 한눈에 반하지 않았을까.

경회루에는 48개의 높은 돌기둥이 있다. 기둥의 바깥은 네모 모양, 안쪽은 원형이다. 선조들은 동그라미를 하늘, 네모는 땅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건축물 곳곳에는 신을 섬기는 옛 선조들의 세계관이 담겨 있었다. 돌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여러 가지 뜻이 담긴 곳이 바로 궁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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