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구상유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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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윤 소설가

사자성어에 구화지문(口禍之門)이라는 글이 있다. 해석을 하자면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라는 뜻이다.

옛날이나 현대에 사는 사람들은 말 한 번 잘못하여 구설수에 오르면 명예가 실추되고 심지어 멸문지화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공자는 논어에 말은 삼가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 시대에도 미사여구와 교언영색을 능사로 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었던 것 같다.

당나라 말기에 풍도라는 사람은 당나라가 망한 뒤 진나라, 거란, 한나라 등 여러 나라에 걸쳐 벼슬살이를 했다. 어지러운 전국시대의 세상에 살면서도 그는 73세까지 장수를 누리다 죽은 인물이다. 그가 장수를 누릴 수 있었던 비결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결코 편을 가르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증거로 그가 남긴 설시(舌詩)에도 잘 나타나 있다.

입은 재앙의 문이오(口是禍之門)
혀는 곧 몸을 자르는 칼이라(舌是斬身刀)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閉口深藏舌)
가는 곳마다 몸이 편하다(安身處處窂)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대부분 깨끗한데 그 입에서 나는 오는 것은 더럽다고 했다. 재앙은 입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므로 삼가라는 뜻이었다. 공자는 길에서 어떤 말을 들으면 그것을 자신의 마음속에 담아 수양의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며, 들은 즉시 길에서 다 지껄여 버리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으면 바로 입으로 빠져 나고, 군자는 묻지 않은 것에 대한 수다를 떨지 않으나 단지 필요한 것만 말할 뿐이다’라고 다변(多辯)을 경계했다. 좋은 말은 마음에 잘 간직해 두면 자기 것으로 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타계한 모 대통령도 재임 기간 중 말을 함부로 하여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들은 국민들 앞에 하는 말은 진중하고 믿음이 있어야 한다.

구화지문과는 뜻이 다르지만 구상유치(口尙乳臭)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상대를 멸시하여 말과 행동이 아직 어리다는 뜻이다. 한나라 장군 한신은 고조 유방의 명을 받고 위나라를 치기 위해 적진으로 떠났다. 한신이 떠난 자리에서 유방은 깜박 잊은 듯 위나라 군대의 장군이 누구인지 옆의 신하에게 물었다. 신하의 입에서 백직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백직? 참으로 젖비린내 나는 놈이로구만, 그 자가 어찌 한신을 당하겠는가”라고 유방이 뱉은 이 한 마디가 구상유취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이 말을 비유한 우리나라의 유명한 방랑 시인 김삿갓의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삼복더위의 어느 날 김삿갓이 땀을 흘리며 길을 걷다가 쉬어 가기 위해 물가를 찾아 시원한 계곡으로 들어섰다. 마침 나무 그늘 넓은 암반에서 둘러앉은 선비들이 개를 잡아 놓고 시화를 벌이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두주불사라고 일컫는 김삿갓이 당기는 구미를 참고 그곳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그는 선비들의 눈치를 볼 것도 없이 말석에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한참을 지났지만 누구 하나 김삿갓을 눈여겨 신경 쓰는 이가 없었다. 김삿갓은 자리를 털고 슬며시 일어나며 “구상유취로군” 하고 한 마디를 던졌다. 그때서야 선비들은 귀가 뚫렸는지 벌컥 성을 내며 김삿갓을 패대기라도 칠 기세로 달려들었다. 김삿갓은 능청스럽게 손을 내저으며 점잖게 일렀다. “나는 결코 그대들을 비웃지 않았으니 오해 마시오. 단지 개 초상에 선비들이 모여 있다고 했을 뿐이오. 구상유치(狗喪儒聚)라고.” 그 말에 선비들은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같은 말이라도 여유로움과 유머가 섞여 있다면 각박하고 힘든 사회를 훨씬 부드럽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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