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의 세상보기]집안싸움은 그만, 이제 밖을 봐
[최상현의 세상보기]집안싸움은 그만, 이제 밖을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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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현 주필

 
고개지(顧愷之)는 중국의 옛 왕조 동진(東晋, AD 317~419년) 사람이다. 그는 그림과 문학, 서예에 능통했으며 특히 인물화는 당대 최고봉이었다. 이런 재능에 대한 그의 명성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전해 내려온다. 괴짜이기도 한 그는 사탕수수를 먹을 때도 특이한 버릇을 보여주었다. 사탕수수를 먹을 때 가장 먹음직스럽고 맛있어 보이는 굵은 부분을 먼저 먹는 것이 아니라 줄기의 가느다란 부분부터 씹어 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친구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그는 ‘그렇게 먹어야 갈수록 더 맛이 나기 때문(漸入佳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유래한 고사성어 점입가경은 현재는 경치(景致)나 말 또는 글, 어떤 일이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는 것(more and more interesting)을 표현할 때 쓰인다.

미국이 최근 공상과학 소설(SF)에서나 등장함직한 레이저 무기의 실험에 성공했다. 보잉 747-400F기에 실은 공중레이저요격시험장치(ALTB; Airborne Laser Testbed)로 레이저 빔(laser beam)을 발사해 날아오르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가속단계(boosting)에서 요격, 파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ALTB는 레이저빔의 사정거리가 600km 이상으로 적의 방공망 밖에서 탄도탄을 요격할 수 있다. 비행기가 한 번 뜨면 20여 차례 공격이 가능하며 미국 미사일방어시스템(MD)의 1단계를 담당하게 된다. 관계자의 말대로 ‘공중 레이저 요격에서 새 역사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미국은 첨단무기 경쟁에서 경쟁국들에 비해 단연 앞서가는 세계 최고의 군사과학 기술력의 보유국임을 입증했다. 뿐만 아니라 세계의 신무기 경쟁이 그야말로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또한 강대국 간에 벌어지는 공격무기와 방어무기의 경쟁, 창과 방패의 싸움, 소위 ‘모순(矛盾)’의 싸움이 냉전 질서가 해체된 지금에도 계속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서 러시아는 지난 2006년 미국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MD)으로는 방어가 불가능한 극초음속 다탄두 핵미사일 토폴 엠(TOPOL-M)을 개발했다고 지금은 총리지만 당시는 대통령이었던 푸틴이 호언했었다. 토폴 엠은 1발의 미사일에 핵탄두 10개를 싣는 다탄두미사일로서 1만 5천km를 날아간다. 워낙 속도가 빠른데다가 적국의 상공에서 분리되는 탄두 각각이 비행궤도를 자유자재로 바꾸면서 목표를 향해 날아가기 때문에 요격이 불가능하다고 푸틴은 말했었다. 이것을 개량해 러시아의 최신형 보레이급 핵 잠수함에 실은 것이 8천km를 날아가는 그 유명한 블로바 미사일이기도 하다. 미국의 이번 레이저빔 요격 실험 성공은 푸틴의 이 같은 호언장담에 대한 대응이며 대답인 셈이다. 장군 멍군이다.

중국도 얼마 전 미국이 대만에 무기판매를 결행키로 한 것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대륙간탄도탄의 요격실험을 성공시켰다. 자국의 군사과학기술 수준과 첨단군사대비태세를 미국에 보란 듯이 과시했다. 이번 레이저 무기의 실험 성공은 이 같은 중국의 도전에 대해서도 마치 아직 그런 정도의 추격으로는 어림없다는 식의 대답이 돼준 것 같다. 석유와 천연가스로 다시 일어서는 러시아는 물론이거니와 G2로 불릴 만큼 경제력이 욱일승천의 기세로 커가는 중국의 군사력 확충은 더욱 주목을 끈다. 심지어 인민은 굶어 죽어도 핵보유국의 위상을 확보하려는 북한의 움직임은 특히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국과 함께 경제대국이면서 우리의 이웃인 일본은 핵을 뺀 재래식 전력에서 질적으로는 군사대국이다. 유럽의 각국, 중동의 이스라엘, 이란, 인도, 중남미 여러 나라 등 이 지구상 어느 나라도 굶지 않는 나라이면 군사대비태세에 결코 소홀하지 않다는 것을 유심히 봐야 할 것 같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소련의 어떤 핵물리학자는 지구 전체를 파괴할 수 있으면서 우유 병 속에 담을 만한 극소형의 수소폭탄 제조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소름끼치는 소리를 했다고 한다. 현대과학이 사람의 상상이나 공상을 다 실현해내고 있다고 볼 때 과연 강대국들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무기기술 개발경쟁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 그 끝을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그것이 옛 문자 그대로 점입가경으로 멈추어지지 않고 계속 될 것이라는 전망만은 가능할 것 같다. 세계 평화라는 것은 알고 보면 이렇게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싸움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첨단무기개발 경쟁과 힘의 균형 위에 불안하게 얹혀 있는 아주 불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올해가 일제에 의한 강제병합 100년, 소련과 중공을 등에 업은 북한의 남침이 있은 지 60년이 되는 해라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힘이 없으면 먹히고 대비가 없으면 당한다는 것을 뼈아프게 되새김할 때 같은데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뭐하고 있는가. 세종시 건설을 둘러싼 갈등, 좌우이념대립, 소모적 정쟁 등 내홍(內訌)으로 국가 경영을 흔들어대고 있으니 마음이 탄다. ‘나라는 시끄러워도 국민은 위대하다’고 대통령은 말했다. 이런 국민을 배신하면 안 된다. 집안싸움은 그만 멈추고 밖을 보자. 점입가경의 첨단무기 경쟁도 그 일부이지만 냉혹하고 변화무쌍하며 불안한 국제 정세를 살피고 대비하자. 우리의 할 일이 자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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