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반포 570돌] ②여성 삶 글로 기록… 국수 만드는 법부터 행실 규범까지
[한글 반포 570돌] ②여성 삶 글로 기록… 국수 만드는 법부터 행실 규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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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말이 중국과 서로 달라 한자로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니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할 바가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위하여 가엾게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세종실록 中 -
 

양반가, 술 빚는 법 기록해 전수
제사·태교 등 다양한 내용 담겨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이 모두가 잘살기 위한 급선무요, 살림하는 요법이다. 진실로 일용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요, 부녀가 마땅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여성들은 생활의 슬기를 글 속에 담았다. 빙허각(憑虛閣) 이씨가 적은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도 여성의 지혜를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에는 장 담그는 법에서부터 음식 만드는 법, 염색과 세탁에 관한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담겼다. 참고한 책 이름도 작은 글씨로 적어 놨다. 각 항목의 끝에는 저자가 직접 실행하고 확인한 결과도 담겨있다.

여성이 삶과 일상을 글로 표현할 수 있었던 건 언제부터일까. 바로 한글이 창제된 이후부터다. ‘가부장제’ 문화였던 조선시대. 여성은 좋든 싫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한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지는 과정에서 눈물, 설움을 삼켜야만 했다.

하지만 한글 창제로 여성의 삶은 달라졌다. 글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한 자 한 자’ 써 내려 가기 시작했다. 일상 정보는 물론, 음식조리서, 기일록, 의복 목록 등도 글로 적었다.

▲ 음식디미방 (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

◆음식·술 만드는 법 기록

대표적인 음식조리서는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이 있다. 이 책은 1670년(현종 11년)경 정부인 안동 장씨가 작성했다. 음식디미방은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여성이 쓴 조리서다. 또 최초 한글로 작성된 조리서다.

음식디미방의 글자 중 ‘디’는 알지(知)의 옛말이다. 제목을 풀면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이 된다. 국수·떡·만두·김치·찜·국·약과 등 25종류의 음식 만드는 법과, 술·초 만드는 법, 고기·과일·채소·해산물 저장하는 법 등도 담겨있다. 또 고려 말에 등장한 발효 떡인 상화(霜花)의 구체적인 조리법이 문헌상 처음으로 설명됐다. 녹말·녹두가루·메밀 등을 이용한 여러 종류의 국수, 훈연법에 의한 고기저장법 등도 적혀 있다.

술 빚는 방법도 글로 작성됐다.

‘백미 닷 되를 백설하여 가루로 만들어 물 한 말에 그 가루를 섞어 끓여 채운 후, (여기에) 누룩 가루 닷 홉과 밀가루 닷 홉을 한 데 섞어 칠 일을 지낸다. (생략) 이 덧술을 담근 지 칠일이 되면 백미 서 말을 백설하여 (술)밥을 찐다….’

이는 전통술을 짓는 방법이 기록된 문서의 내용이다. 이 문서는 진양하씨(晋陽河氏) 하응운의 부인 인동장씨가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호산춘추제조법(壺山春酒製造法)’이다. 양반가에서는 보통 술을 집에서 직접 빚어 제사와 손님 대접에 썼다. 특히 문서를 통해 제조법을 전수함으로써 시대가 흘러도 맛과 질이 변하지 않게 했다.

▲ 외진연시 무동각 정재 무도 홀기 (제공: 한국학연구원)

◆기록으로 규범·의례 배워

‘나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가르침을 받들지 못하여 평생 통한이 깊었도다. 너를 가르쳐 아비의 교훈을 받들게 하려 하니 내 뜻을 따라 어긋나지 않으면 자식의 도리를 하는 것이로다. 정사년 11월에 아비는 장녀에게 주노라.’

이 책은 김종수의 ‘여자초학(女子初學)’이다. 여성이 익히고 지켜야 할 사항을 간추려 한글로 쓴 책이다. 이처럼 여성들은 기록된 글로 규범을 배웠다. 이 책에는 여성의 행실 규범을 항목별로 나눠 기록했다. 몸가짐을 비롯해 음식, 의복, 제사, 접빈객, 태교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송시열의 ‘우암계녀서(尤菴戒女書)’도 있다. 이 책은 우암 송시열이 권유에게 시집가는 맏딸을 위해 쓴 책이다. 서문과 발문에는 딸을 시집보내는 늙은 아버지의 걱정이 담겨있기도 하다.

왕실의 상층 여성이 익혀야 할 규범은 더욱 남달랐다. ‘곤범(壼範)’은 유교 경전인 사서삼경(四書三經)과 근사록(近思錄) 등에서 집안의 법도와 부인의 규범이 될 만한 구절을 발췌해 한글로 해석한 책이다. 곤범의 곤은 ‘대궐의 안길, 문지방의 안쪽’이라는 뜻으로 왕실 여성을 비롯해 부녀자를 대상으로 한 규범서다.

궁중에서는 잔치 때 벌인 춤과 노래도 기록으로 남겼다. ‘외진연시 무동각 정재 무도 홀기’는 1901년 고종황제의 탄생 50주년을 축하하는 잔치에서 여령(女伶)과 무동(舞童, 춤추던 어린 아이)들의 춤 순서를 적은 한글본 홀기다. 정재별로 배열도와 진행 절차, 반주음악과 가사가 수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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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연 2016-07-16 16:38:37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