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이 정한효 직무대행에게 업무와 관련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안내문. ⓒ천지일보(뉴스천지)
▲ 법원이 정한효 직무대행에게 업무와 관련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안내문. ⓒ천지일보(뉴스천지)

직무대행 측
정한효 직무대행 “신임 성균관장 선출이 내 소명”
‘성균관보’ 발행하고 지도부·총무처 비판 메시지

법원
직무대행, 잠정적 현상유지를 위한 통상업무하고
 중립적인 지위에서 분쟁을 조정하는 공적 성격”

총회 대의원
유림들 반발 “직무대행이 해야 할 역할 아냐”
임시총회 개최하고 자체 ‘성균관 정상화’ 시작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법원이 어윤경 성균관장의 직무집행정지 기간 동안 정한효 직무대행을 임시로 선임했지만 유림 내 설 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다. 내부 신임을 얻지 못한 채 도리어 반감만 사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1민사부는 지난 6월 13일 어윤경 관장의 직무집행정지기간 중 정한효 직무대행을 선임했다.

보름 후 성균관 대의원들에게는 ‘성균관보’라는 이름으로 유인물이 배포됐고, 성균관 총무처가 발칵 뒤집혔다. 성균관 기관지격인 유교신문과 성균관 출판부를 비롯한 총무처가 버젓이 있음에도 발행처가 ‘성균관’으로 명시된 ‘성균관보’가 나왔기 때문이다.

또 정한효 직무대행 측이 발간한 성균관보에 실린 내용 때문에도 술렁였다. 이 유인물에서 정 직무대행은 법원의 결정을 환영하며 “이번 법원의 직무대행 선임이 성균관을 시급히 안정화하고 공명정대하게 신임 성균관장을 선출하라는 소명으로 알겠다”며 “성현께서 가르치신 예의염치에 근본하여 털끝만한 사심도 없이 직무대행의 소임을 다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말 그대로 법원이 자신을 직무대행으로 선임했기에 성균관 안정화를 위해 신임 성균관장을 뽑겠다는 것이다.

어 관장의 직무집행 정지 기간이 본안소송 완료까지 ‘임시’적인 상황에서 정 직무대행의 주장대로 신임 성균관장을 뽑는 게 가능한 것일까. 만약 그의 주장대로 신임 성균관장이 선출된다고 가정할 때, 어 관장이 본안소송에서 승소하면 성균관장은 두 명이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관장 직무대행의 권한은?

법원이 인준한 직무대행의 권한은 어디까지일까. 본지는 법원이 어느 선까지 정 직무대행에게 권한을 준 것인지 재판장 이제정 판사가 정 직무대행에게 보낸 안내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안내문에서 직무대행의 역할은 ‘잠정적 현상유지를 위한 통상업무’ ‘중립적인 지위에서 분쟁을 조정하는 공적 성격’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법원은 본안소송이 계속 중인 동안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잠정적 현상유지를 위한 통상업무’에 주력하고, ‘직무대행자의 행위가 단체의 임원구성이나 본안소송의 계속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에는 재판부에 문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 어윤경 성균관장의 본안소송이 끝나기 전까지는 임원구성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를 직무대행이 단독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원은 “직무대행자로서 일차적인 목표는 단체 내부에서 적법한 임원의 지위에 있지 않은 자가 임원의 지위를 주장하며 사실상 권한을 행사하여 단체 내의 혼란이 가중되지 않도록 현상을 보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분쟁 해결을 위해 1개월마다 정기보고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또 법원은 정 직무대행의 역할에 대해 ‘단체의 운영을 임시적으로 담당하여, 중립적인 지위에서 분쟁을 조정하는 공적 성격을 가지는 위기관리자로서의 역할’이라고 명시했다. 아울러 “직무대행자는 본안소송에서 피고의 지위에 있는 단체를 대표하여 소송을 수행하여야 하므로, 가처분을 신청한 채권자의 일방적인 주장이나 요구에 따라 직무대행자의 업무를 수행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경계했다.

성균관 총무처는 이 문구를 들어 정 직무대행이 어 관장을 대신해 직무를 수행하는 게 아니라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직무를 수행하려 한다며 반감을 표했다. 어 관장의 입장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성균관 내 분쟁을 조정해야 하는 직무대행인데, 신임 관장을 선출하려는 행동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 지난 5일 성균관에서 임시총회가 열린 가운데 정한효 직무대행 측이 대의원들에게 배포한 '성균관보'. ⓒ천지일보(뉴스천지)

◆‘성균관보’ 때문에 술렁인 유림

정 직무대행 측이 배포한 성균관보에는 성균관 총무처를 향한 불쾌감이 드러나 있었다. 성균관보에는 정 직무대행의 입장문과 지지자들의 글 외에도 ‘사진으로 보는 성균관의 혼란’이라며 몇장의 사진과 함께 법적 문서들이 실렸다. 이들은 “관장직무대행의 직무를 관장부속실 직원책상에서 하라면서 책상위에 종이 명패를 설치해둔 사진”이라며 해당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속 좌석에는 한자로 ‘성균관 법원 파송 분쟁조정 직무대행 정한효’라고 적힌 한지 명패가 기존 명패 위에 설치돼 있었다. 법원 판결이 났음에도 정 직무대행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뉘앙스의 사진이다.

아울러 성균관을 방문했다가 총무처장의 지시를 받은 직원에게 봉변을 당했다며 한 유림원로가 손목과 팔에 깁스를 한 사진도 실렸다. 사진 옆에는 ‘경찰출동으로 소행자 연행’이라는 문구까지 적혔다. 성균관 총무처에 폭행행사 의혹을 제기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성균관보에 실린 정 직무대행 측의 입장을 읽은 일부 유림들은 술렁였다. 한 유림은 “법원이 판결문을 통해 인정했으면 총무처에서 인정을 해야 하는 게 맞다. 법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성균관장도 잘못이 있다면 사퇴해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성균관 총무처는 불쾌감을 드러냈다. 먼저 ‘종이 명패’와 관련해서는 정 직무대행이 법적 지위를 얻어 성균관을 방문한 때가 16·17일이라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으며, 예우를 갖춰서 한지에 한자로 직책을 명기해 임시 명패를 설치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법원에서 파송한 정 직무대행을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또 팔에 깁스를 한 유림원로 사진에 대해서는 “여든이 넘은 원로이고, 넘어져서 다친 후 누군가 경찰을 불러서 조사도 했지만 문제가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해명했다.

정 직무대행은 지난달 16, 17일 주변 인사들과 함께 법적 지위를 행사하며 성균관 총무처를 방문했지만 물리적인 마찰만 빚었다. 성균관 총무처는 법적 지위를 얻은 정 직무대행은 인정했지만 다른 주변 인사들은 성균관 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들이기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다. 그리고 정 직무대행 외 다른 인사들의 출입을 거부했다. 하지만 정 직무대행 측 인사들은 관장실에 들어가겠다고 진입을 시도했고, 한 차례 소란이 일었다.

◆직무대행-총무처, 평행 구도

정 직무대행 측은 ‘혼란 극복의 결실’이라며 성균관보에 성균관 부관장단 회의가 열렸다는 소식도 실었다. 아울러 정한효 직무대행을 법원이 선임한 6월 13일자 ‘직무대행자 선임 가처분 판결문’과 지난 3월 30일 판결된 ‘총회개최 금지 가처분 판결문’도 함께 게재했다.

정 직무대행 측이 실은 이 판결문에 따르면 올초 황병근 부관장을 직무대행에 임명하고, 최근 임시총회를 개최한 성균관 유림들이 마치 불법을 저지른 것을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두 판결문은 발표된 시기에 차이가 있다. 어윤경 관장이 소송에 휘말린 후 법원의 직무집행 정지 처분에 따라, 성균관 유림들은 정관에 따라 지난 1월 신년하례식에서 자체적으로 황병근 부관장을 직무대행으로 선임했다. 법원이 정 직무대행을 선임한 때는 6월이기에 그 전에 황 부관장을 직무대행으로 선임했던 결정이 결국 불법은 아닌 셈이다. 성균관은 법원 결정 이후에는 정 직무대행을 인정했고, 이번 임시총회에서 황병근 부관장은 직무대행의 자격을 행사하지 않았다.

정 직무대행 측이 이번 임시총회가 위법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도 성균관 총무처는 임시총회가 대의원 1/3이 요구하면 대의원들에 의해 열릴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합법적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지난 5월 한차례 임시총회를 개최하려 했지만 대의원 1/3이 총회를 요구했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해 결렬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총 대의원 900여명 중 348명이 총회 소집을 요구해 명분을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정 직무대행과 유림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성균관 총무처와 유림들은 이번 총회를 기점으로 자체적인 정상화를 이루겠다는 계획이다. 11일 이종훈 경기도향교전교협의회 회장 등 10명의 성균관총회대의원 공동대표들은 이번 임시총회 성공을 자축하는 성명을 내고 ‘성균관 정상화’를 표명하고 나섰다.

정 직무대행이 법적 지위를 얻어 신임 관장을 선출하겠다고 나섰지만 유림들의 반감만 샀고, 게다가 법원의 안내문에 대한 해석차까지 보이고 있어 정 직무대행이 어 관장의 본안 소송 완료 때까지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지를 놓고 비관론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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