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후 통상전쟁 예고
G2 무역분쟁 한국에 ‘불똥’
한국제품 잇단 반덤핑 제소
사드발 중국 경제 보복 우려

[천지일보=임태경 기자] 갈 길 바쁜 우리 경제가 ‘사면초가’에 직면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라는 초대형 암초를 만난 것이다. 중국과 미국 간의 통상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고래 싸움에 낀 새우와 같은 상황으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수출 부진과 내수 침체, 조선·해운 구조조정 등으로 내홍에 싸인 우리 경제가 주요 2개국(G2) 파워게임에 말려들어 자칫 시계제로의 혼전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G2 무역전쟁에 휩쓸린 한국

최근 미국 민주당은 강도 높은 보호무역 기조를 반영한 대선정책 초안을 작성했다. 초안에는 자유무역협정(FTA) 재검토, 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수정, 환율조작국에 대한 강력한 응징 방침이 포함됐다. 민주당의 대선주자 힐러리 클린턴은 자유무역 지지론자임에도 대선 정책까지 바꿔가며 표심 잡기에 들어간 것은 미국의 밑바닥 경제 분위기를 외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미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보호무역을 내걸고 극단적 고립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되든 미국과 다른 국가 간의 통상 마찰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보호무역 초안에는 특히 중국을 구체적으로 지목하고 있어 주요 2개국(G2) 간 전면적인 무역전쟁이 예고되고 있다.

이미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 제품에 대해 대대적인 제재 절차에 돌입했다. 지난달 중국산 냉연 강판에 522%의 관세 폭탄을 부과했고, 중국산 철강제품에 대한 전면 금수 조치까지 취할 수 있는 조사에 착수했다. 사실상 중국 철강제품에 대한 퇴출 수순을 밟은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 제조업체인 화웨이에 북한과의 거래 내역을 제출하라고 요구, 중국 기업에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화웨이가 수출이 제한된 품목들을 북한 등에 불법 수출했다는 의혹에 따른 조치로 혐의가 확인되면 고강도의 제재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 미국이 중국산 철강에 대해 사상 최대수준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출처: 뉴시스)

이렇게 미국 대선 이전에 오바마 정권의 중국 때리기가 연일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도 마냥 지켜만 보지 않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중국산 제품 제재에 강하게 반발하며 세계무역기구(WTO) 소송 제기도 불사할 뜻을 내비쳤다. 중국 당국은 “미국의 조치는 무역보호주의에 따라 중국 기업을 겨냥하고 중국 제품을 배척하려는 의도”라며 “중국 기업 제품의 반덤핑 관세 부과, 최근 담합 혐의 조사 착수 등을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중국이 미국산 닭고기류에 고관세를 부과한 것에 대해 WTO가 미국의 손을 들어줬지만, 중국은 기존 관세를 유지하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조류독감을 이유로 미국산 닭 판매를 아예 금지했다.

G2가 벌이는 파워게임에 한국은 이미 휘말리고 있는 모양세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에 한국에 불똥이 튀면서 주요 수출품이 잇따라 반덤핑제소를 당하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미국은 올해 5월 말까지 36건에 달하는 반덤핑·상계관세 조사에 착했다. 이 중 4건(11.1%)이 한국산 제품으로 중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한국산 내식강(부식방지처리강판)에 대한 반덤핑 및 상계관세 부과를 확정했다. 한국은 이번 미국 조치로 최대 47.80%의 반덤핑 관세를 물어야 한다.

▲ 1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고고도미사일방체계(THAAD·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이 사드 배치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한국경제, 사드 리스크 급부상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한미 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 발표로 한국경제는 또 하나의 리스크를 떠안게 됐다.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의 구애와 압박 속에 정부와 경제계는 ‘눈치 보기’에 돌입,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정부는 한반도 사드 배치로 중국의 대규모 경제보복은 없을 거라 판단하면서도 물밑에서는 시나리오를 만들고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일 중국의 경제보복 가능성에 대해 “(중국이) 정치와 경제는 분리하지 않을까 예측한다”면서도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에 상응하는 플랜들을 짜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중국의 경제보복이 없다”고 하면서도 대책 마련에 부심한 것은 사드로 인해 한중 관계가 악화된다면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무역위축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6%, 외국인 관광객은 45%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이 중국과의 교역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3분기 제조업 체감 경기가 전분기에 비해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수출 기업의 심리 위축까지 불러올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2의 마늘 파동과 같은 중국의 통상 보복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000년 정부는 농가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중국산 냉동 및 초산마늘에 300%가 넘는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반발한 중국은 일주일 뒤 우리나라의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입을 잠정 중단하는 조치를 내렸다. 수출 기업의 항의에 버티지 못한 정부는 중국에 백기를 들었고 중국산 마늘에 대한 관세율을 이전 수준으로 되돌렸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대외 경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중국 무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수출 시장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치·외교 논리로 우리 경제가 대외 눈치만 살필 수는 없다”며 “중국 중심의 교역 시장을 벗어나 새로운 시장 개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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