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지방선거전이 가열하고 있다. 많은 정치지망생들의 출마선언이 잇따르고 빌딩 벽에는 후보자들을 홍보하기 위한 대형 현수막이 요란하다. 각 정당들도 선거채비가 한창이다. 이런 와중에 민주당의 아성이라 할 호남지역에서 최근 매우 유감스런 행태가 빚어졌다. 호남지역에서 이른바 ‘기초의원 선거구제 쪼개기’를 전격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현재 기초의원 선거구제는 한 선거구에서 4명의 의원을 뽑는 대선거구제가 일반적이다. 이른바 ‘4인 선거구제’다. 이는 선거구 범위를 넓혀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을 뽑도록 함으로써 군소정당 출신을 비롯해 정치 신인의 지방기초의회 진입 가능성을 높이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런데 조례제정권을 가진 광역의회가 최근 잇달아 ‘4인 선거구제’를 쪼개 ‘2인 선거구제’로 바꾸는 조례안을 제정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행보가 특정정당의 의회 독과점이 심각한 영호남 지역에서 경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는 특정정당의 지지도가 높은 이 지역에서 자당 후보를 복수로 내어 의회를 아예 독식해버리자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거구 쪼개기에 먼저 시동을 걸고 나선 것은 대구시의회였다. 대구시의회는 지난 10일 본회의를 열어 4인 선거구를 모두 2인 선거구로 바꾸는 선거구획정 조례안을 의결했다. 한나라당이 절대 다수당인 대구시의회는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발을 무시하고 경찰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개정안을 밀어 붙였다.

대구시의회의 뚝심에 자극을 받아서였을까. 이번에는 호남지역 광역의회들이 나섰다. 전북도의회는 17일, 광주시의회는 18일, 각각 선거구 쪼개기를 강행했다. 전북도의회는 전주시 4인 선거구 5곳을 2인 선거구로 나누었고 광주시의회도 4인 선거구 6곳을 2인 선거구로 분할하기로 의결했다. 특히 광주시의회는 대구처럼 경찰 병력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직권상정 처리해 군소야당과 시민단체들의 분노를 샀다.

호남지역 민주당이 여론의 역풍을 예상하면서도 선거구 쪼개기를 강행한 것은 의회를 독식하기 위한 과욕 탓도 있지만 지역에서 일고 있는 여론의 이상조짐에 긴장한 까닭도 있는 것 같다. 호남지역에서 민주당은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이래 단체장과 지방의회를 독과점 해왔다. 한마디로 지방권력에 관한 한 ‘민주당 일당독재’ 체제가 20년 가까이 지배해온 것이다. 하지만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라는 정치학 이론은 이곳에서도 사실임이 입증됐다. 광주광역시의원의 경우 무소속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민주당 소속인데 그동안 선거법 위반으로 3명, 비리 혐의로 2명이 의원직을 상실하거나 제명됐고, 1명은 총선 출마를 이유로 시의원직을 중도 사퇴하는 등의 물의를 일으켰다. 또한 기초단체장도 마찬가지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기초단체장 230명 중 36명(15.7%)이 뇌물수수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는데, 이 가운데 전남이 8명으로 가장 많았다. 전남 전체 기초단체장이 22개임을 감안하면 비율도 36%로 타 지역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이 같은 현상은 전북도 대동소이하다. 이는 전적으로 민주당이 지방 행정과 의회를 독과점하는 일당지배적 정치구도 때문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의 담합구조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치러진 전남 장흥지역 광역의원 및 광주 서구 기초의원 보궐선거에서 민노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것은 바로 이 같은 안하무인식 전횡에 식상한 민심의 반영일 터이다.

민주당의 선거구 쪼개기는 그 발상 자체도 문제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 야 5당이 추진 중인 후보단일화를 골자로 한 선거연대에도 크게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독식을 위해서라면 편법이라도 불사하겠다는 민주당의 과욕이 드러난 이상 수도권 등지에서의 선거연대는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기초의원을 더 차지하기 위한 민주당의 꼼수가 자칫 지방선거 전체를 그르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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