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쌍꺼플 없는 깊은 눈에 동글한 코, 시원한 입의 동양적인 미모를 가진 배우 한예리. 이 작은 얼굴에서 연변 처녀, 연구원, 무사까지 다양한 캐릭터가 완성된다. 한예리는 충무로의 기대주이자 무용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어렸을 때부터 해온 무용덕분에 작은 체구에도 다부진 근육을 가지고 있다. 그의 건강함이 많은 캐릭터를 완성하는 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어떤 색을 칠해도 어울리는 꽃처럼, 한예리는 어떤 배역도 자신만의 색으로 물들인다. 그런 그가 이번엔 영화 ‘사냥(감독 이우철)’에서 팔푼이 양순이로 변신했다. 최근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에서 배우 한예리를 만나 ‘사냥’의 뒷이야기를 들어 봤다.
다음은 한예리와의 일문일답.
- 영화 ‘사냥’을 선택한 이유는.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안성기 선배님이 하시기 때문이다. 전부터 안성기 선배님을 존경해서 꼭 한번 같이 작품을 해보고 싶었다. 시나리오에서 양순이처럼 부족하고 느린 친구의 역은 해본 적이 없어서 좋았다. 기성과 양순이의 드라마도 저한테는 시나리오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드라마여서 좋았다. 사냥의 시나리오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 영화에서 배우 조진웅을 엎어 치기하는 장면은 통쾌했다.
감독님도 그걸 노리시고 하신 것 같다. 뭔가 상대가 되지 않는 큰 산을 넘기는 것을 의미한다. 산에서 자란 양순이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고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 영화 속에서 짐승의 내장으로 우려낸 술을 맛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클로즈업 촬영할 땐 진짜 제품이었으나 멀리서 맛보는 장면을 찍을 때는 차(茶)였다. 맛본 뒤 혀를 손으로 닦는 모습은 아이들의 모습에서 따왔다. 아이들이 신맛이나 쓴맛을 느낄 때 혀를 그렇게 닦더라. 그게 자세하게 보이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양순이가 어떤 아이인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인 것 같다.
- 캐릭터 선정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 같다.
굳이 가리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이미지 만들어야 되는 시기가 있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찍어야 할 것을 안 찍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양순이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예쁜 부분이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 안 된다.
- 안성기 선배와 일한 소감은.
안성기 선배님은 선생님이라는 말을 싫어하신다. 첫 만남에서 “가깝게 느꼈으면 좋겠다. 선배님이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영화하기 전까지는 막연하게 안성기 선배님을 봤다. 한국영화의 산증인 안성기 선배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컸다면 영화를 하고 나서는 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지를 느끼게 되고 더 많이 존경하게 됐다.
다른 게 아니라 선배님은 1년 내내 일이 많으시다. 그 일 중에는 아주 자잘한 행사도 있는데 그런 행사는 선배님 위치기 때문에 가야된다고 할 수 있지만 안갈 수 있다. 그런데 아주 자잘한 일들을 다 해주신다. 영화를 위해, 영화인들을 위해서.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영화를 찍고 있다는 생각한다. ‘최전방에서 최고참이 서니까 우리가 버티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몸소 보고 체험하니까 좀 더 많이 반성하게 되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게 된다.
- 배우 안성기와 조진웅을 동물로 비유한다면.
안성기 선배님은 늑대 같다. 산이랑 어울리는데 위기가 와도 안정적으로 대처하신다. 조진웅 선배님은 연기하는 게 큰 구렁이 같다. 쓱 와서 핵심을 찍는다. 큰 무언가가 왔다가 노련하게 이동하는 느낌. 조진웅 선배님같이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 해보니 어떤가.
어렵더라. 혼자 진행하는 게 아니다. 작가분들도 많이 고민하셔서 회의도, 준비도 많이 한다. 당시 ‘육룡이 나르샤’ 끝나고 새벽에 준비하고 이런 시간을 가졌는데 왜 MC분들이 있어야 하는지 알겠더라. 본인이 생각한 대로 끌고 가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준비한 것들을 차근차근 사이에 배치하는 게 어렵더라. ‘마리텔’을 통해 한국무용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단 한분에게라도 한국무용에 대해 알리고 싶었다.
- 무용가로서 활동은.
지금은 사실 연기가 주가 돼 있다. 무용은 부지런하게 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무용을 못 한다고 해서 너무 걱정하진 않는다. 하고 싶으면 언제든 취미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가 좋아하는 마음을 변하지 않으면 될 것 같다.
- 어떤 배우의 길을 가고 싶나.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게 목표 꿈이다. 그런데 좋은 배우라는 게 어렵다. ‘좋다’라는 것에 포함되기도 어렵고, 안성기 선배님을 보면서 대한민국에 많은 사람 중에 좋은 배우 10명을 꼽으라고 하면 무조건 선배님이 들어가겠구나 싶었다. 선배님처럼 나이 먹고 베풀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