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최초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인 ‘홍길동(신동헌 1967)’의 포스터.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신동헌 감독, 신문 연재만화 각색
미군 쓰다 남은 정찰용 필름 이용

제작기간 1년 2천만원 들여 완성
사운드필름만 남아 확인 안되다
2008년 일본서 더빙판 2편 발견
복원 과정 거쳐 DVD로 내보내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한국 최초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신동헌 1967)’을 DVD로 만날 수 있게 됐다.

1967년 1월 7일 서울의 대한극장을 비롯해 부산과 광주, 마산 등 전국대도시 7개관에서 개봉된 ‘홍길동’은 당시 장안의 화제를 불러 모았다. 개봉 나흘 만에 10만명의 관객이 몰렸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영화를 완성했다’ ‘3세부터 90세까지 온가족과 함께 즐길 훌륭한 장편 만화영화를 가지게 되었다’며 언론들은 대서특필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다는 특수성을 담은 한국 최초의 총천연색 장편 애니메이션이 처음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본국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우리의 정서에 맞춰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수입에서 복원까지

1960년대 중반 우리나라 영화계는 성장을 거듭해 다양한 영화를 수용할 수 있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디즈니의 영화들을 수입해 수익을 내던 세기상사는 1965년 가을 신동헌 감독에게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을 제안한다. 당시 ‘진로소주’ 등 극장용 CF애니메이션을 그렸던 신 감독은 오래전부터 장편을 제작하고픈 꿈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승낙했다. 그는 동생 신동우가 ‘소년조선인보’에 연재하던 ‘풍운아 홍길동’을 각색하기로 한다.

제작 과정은 이렇다. 신동우 작가가 먼저 스토리보드를 A4 반절 크기 종이에 그리고 일부는 색감을 표현하기 위해 채색한다. 그러면 스텝들은 각자 맡은 부분의 스토리보드를 책상 앞에 압정으로 붙여놓고 동작을 연구해 연결한 후 신 감독에게 합격을 받는다. 이들은 미군이 쓰다 남은 정찰용 필름의 젤라틴을 양잿물에 벗긴 셀룰로이드 위에 포스터물감을 칠하는 방법으로 작업했다. 그렇게 꼬박 1년을 작업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홍길동’이 완성됐다. 총 30여명의 스텝과 2000만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하지만 ‘홍길동’은 40여년간 작품이 소실돼 실체 확인이 불가능했다. 한국영상자료원에 보관된 자료도 사운드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 7릴뿐이었다. 그러나 지난 2008년 한 애니메이션 연구자의 제보로 영상자료원은 일본 고베 플래니트 비블리오테크에 일본어 더빙이 된 16밀리 프린트 2릴, 도쿄 디지털 메메사에 16밀리 프린트 2릴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 한국영상자료원 관계자가 일본 고베 플래니트 비블리오테크에 있는 홍길동 일본어 더빙이 된 16밀리 프린트 2릴을 확인하고 있다.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영상자료원은 두 프린트를 비교해 화질이 좀 더 양호한 플래니트 비블리오테크의 16밀리 프린트를 대여해 35밀리 듀프 네가 필름으로 확대복사 작업했다. 또 보관 중이던 한국어 사운드 필름과 함께 35밀러 프린트 복사작업을 해 원본에 가까운 상태로 복원했다.

◆탐관오리 벌하는 홍길동

“아버님, 아니 대감. 홍씨 가문으로 태어나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겠습니다.”

영화는 홍길동이 자기 집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처음 만난 사람은 여행의 동반자인 차돌바위다. 홍길동은 차돌바위에게서 백성을 괴롭히는 탐관오리 고을 사또 엄가진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를 엄벌하려 찾아가지만 매를 맞고 있는 곱단이의 아버지를 구해오는 것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후 검술을 배우기 위해 백운도사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오랜 수련을 마치고 단발령이라는 지역에 있는 덥석부리라는 사람과 함께 활빈당을 창설한다. 병조판서 최불훈은 수하인 엄가진이 홍길동에게 당하자 아버지 홍판서와 생모를 잡아 가둔다. 홍길동은 활빈당과 함께 최불훈을 처치하고 승리를 거둔다.

영화는 적서차별이 엄격한 이조 중엽 조선의 신분질서를 보여준다. 홍길동은 적자로 사내란 모름지기 의로운 일을 해야 하며, 큰일을 위해 배워야 한다는 정신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의 적대자인 병조판서 최골훈이 하는 일이 무엇이며 왜 적대감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개연성이 부족하다. 게다가 마지막 홍길동과의 대결에서 큰 위협이 되지 않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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