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맞춤형 보육 정책 시행 일주일 째인 7일 서울 구로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이 놀이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3~5월까지 적응시킨 아이들
생체리듬 모두 깨뜨린 상황”

종일반 아이도 오후 4시 하원
맞춤형 보육제도 실효성 논란

[천지일보=김민아 기자] “맞춤형 보육은 현장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에 불과합니다. 정부가 내세운 ‘부모와의 애착 형성’이 목표라면 이 정책은 실패한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일부터 맞춤형 보육제도가 전국 4만 2000여개 어린이집에 도입됐다. 그러나 어린이집에서는 “현장 상황에 대한 이해도 없고, 혼란만 불러일으키는 제도”라는 볼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서울 구로구에서 20년째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A(63) 원장은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 아닌 7월부터 시작된 맞춤형 보육제도의 시행 시기부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이들이 집을 떠나 처음으로 보육시설에 맡겨지면 3~5월에 걸쳐 적응기를 보내는데, 맞춤형 보육이 7월부터 시행되면서 그동안 적응시킨 아이들의 생체리듬이 모두 깨졌다는 게 A 원장의 설명이다.

A 원장은 “보통 아이들이 오후 1시부터 낮잠을 자기 시작해 오후 3시 정도 돼야 일어난다. 그러나 맞춤반의 경우 오후 3시에 하원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잠자던 아이를 깨워서 집에 보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후 2시~3시 사이에 하원이 이뤄지면서 점심시간 이후 교사들의 휴게 시간도 보장하기 어려워졌다. B(32) 보육교사는 “아이들이 낮잠 자는 시간에 잠시 쉬거나, 각종 서류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맞춤반 하원 준비로 이 시간마저 사라졌다”며 “그나마 숨 돌릴 수 있었던 시간이 없어졌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맞춤형 보육제도의 실효성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종일반 부모의 상당수가 여전히 조기하원을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워킹맘 이규선(34)씨는 “아이가 종일반에 편성됐지만, 오후 시간에 어린이집에서 별도의 교육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아이만 늦게까지 남아 있는 게 마음에 걸려 할머니를 통해 오후 4시쯤 하원을 시키고 있다”며 “괜한 예산 낭비만 초래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에서 민간어린이집을 운영하는 C 원장도 “종일반 아동들도 보통 오후 4~5시경에는 모두 하원해 오후 늦게까지 남아 있는 아이들이 별로 없다”며 “보육시설에서의 12시간 보육이 이뤄졌을 때 발생하는 아이의 정서불안 등 부작용에 대해 부모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후 4시 이후에는 친인척이나 양육 도우미를 통해 대부분의 아이들이 하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맞춤반 아이들에게 지원되는 긴급 보육 바우처도 취지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긴급 보육 바우처는 맞춤반 부모가 불가피한 사정이 생겼을 때 월 15시간까지 추가 보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 비상용 제도다.

그러나 어린이집에서는 오후 3시에 귀가하는 맞춤반 아이들의 낮잠, 간식 문제가 불거지자 긴급 보육 바우처를 이용해 종일반 아이들과 같이 하원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도리어 맞춤반 학부모들은 15시간 외에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보육료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A 원장은 “맞춤형 보육제도가 능률, 비용 절감 등의 효과는 전혀 없고 보육교사의 근무 환경만 더 열악해졌다”며 “기본 운영시간을 8시간으로 하고, 12시간 이상 보육이 필요한 경우 특수 어린이집이나 특별반을 운영하는 방식이 더 합리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말 정부가 부모와의 애착 형성을 고민했다면 맞춤형 보육을 통한 12시간 보육이 아닌 가정에서 학부모가 양육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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