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뉴시스)

고립주의·반세계화 움직임
경제대공황 모습 재연 조짐
2008년 세계 금융위기 후
G20 무역제한 조치 급증
무역·관세장벽으로 시장통제

[천지일보=임태경]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글로벌 경제는 대격변을 예고했다.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한 영국은 세계화를 부정하며 세계 경제 질서에 균열을 불러왔다. ‘나부터 살고보자’ 식의 자국 이기주의는 전 세계에 신(新)고립주의를 확산했고, 세계화로 대변되는 ‘블록경제’는 요동쳤다.

최근의 세계경제 상황은 1930년대 ‘경제대공황’ 당시의 모습을 재연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87년 전 불어닥친 대공황의 망령 이면엔 ‘보호무역’이 있었다. 미국과 유럽이 서로 고관세를 물리며 극단적인 보호주의로 맞선 결과 세계 시장은 극도로 위축됐다. 경제 위기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넘어 단숨에 모든 자본주의 국가로 퍼졌고,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 됐다. 탈세계화의 바람에 흔들리는 세계경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막오른 무역전쟁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 글에서 “선진국의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면서 우리 수출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권 회장의 걱정대로 글로벌 경기 불황에 브렉시트가 더해지면서 주요 교역국의 무역장벽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최근 세계 각국이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하는 조치를 내놓자 세계무역기구(WTO)는 경고에 나섰다. WTO는 ‘주요 20개국(G20) 무역조치’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10월 중반부터 올해 5월 중반까지 G20 국가들의 각종 보호무역조치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부터 7개월간 G20이 도입한 무역제한 조치는 145건이었다. 한 달에 21개, 매주 5개꼴로 새로운 무역 장벽이 생긴 셈이다. 2008년 이후 G20이 도입한 보호무역조치는 1583건에 이른다. 세계 경기 불황과 중국의 등 신흥국의 성장이 둔화하자 자국 경제를 위해 보호무역 정책을 강화한 탓이다.

특히 올해 대선을 앞두고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거세지고 있다.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뿐만 아니라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도 기존 무역협정에 대한 재검토를 시사하면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미국의 통상 환경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대미(對美) 무역 흑자규모가 큰 한국도 미국과의 통상갈등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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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 없는 경제전쟁… 환율전쟁 ‘암운’

무역분쟁 확산은 통화전쟁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각국의 무역장벽이 높아지면서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자국 통화 가치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브렉시트 여파로 세계 금융시장의 여진이 지속되자 통화 강세를 겪고 있는 일본과 미국이 수출 감소를 우려해 경쟁적으로 통화를 절하하고 ‘환율전쟁’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총성 없는 경제전쟁, 즉 통화전쟁은 이미 물밑에서 진행 중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 마크 카니 총재는 지난달 30일 “통화정책 완화가 올여름 필요하다”고 밝힌 데 이어 “금융안정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중국의 환율 정책에 연일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제이컵 루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달 중순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절하하는 정책으로 회귀한다면 미국과의 긴장이 심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이컵 루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지난해 8월 중국이 위안화를 전격 절하한 뒤 미국 달러화에 대한 위안화 가치가 조금씩 상승했다가 지난해 11월부터 다시 빠르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비상상황이다. 아베 신조 정권이 4년을 공들여 떨어뜨린 엔화가치가 브렉시트 충격으로 급등했기 때문이다. 일본 재무성 고위 관계자는 “국익과 국익의 싸움”이라며 비장한 각오를 내 비췄다. 엔화 가치 급등을 좌시하지 않고 언제든 시장에 개입해 글로벌 통화전쟁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중국 인민은행도 지난 1일 위안화 가치를 달러 대비 0.28%로 절하하며 연일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중국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추가 절하를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제 사회가 경제 안정을 위한 공조를 외치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해선 환율전쟁도 불사할 만큼 아군도 적군도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 (출처: 뉴시스)

◆무역 의존도 높은 韓 위기론

한국은 소규모 개방 경제이자 무역 비중이 높은 경제구조로 되어 있기에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회귀는 한국경제에 치명타다.

수출이 17개월 연속 감소하는 등 경제적 부진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통상전쟁과 환율전쟁 소용돌이에 휘말린다면 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무역의존도가 90%에 이르는 한국경제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 기업들은 주재국에서 보호주의적 조치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3일 전경련 회원사 국외법인을 대상으로 올해 상반기 경영실적 및 하반기 경기전망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25.2%는 지난해보다 외국기업에 대한 규제가 더 심해졌다고 답했다. 내용 면에서는 새로운 규제를 도입(31.7%)하거나 기존 규제라 하더라도 엄격하게 운용(41.3%)하는 방식을 통해 자국 기업을 보호하는 조치들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조치를 시행하는 경우도 19%에 달해 보호주의 확산 우려가 단순한 우려가 아닌 사실로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줬다.

엄치성 전경련 국제본부장은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 요소로 경제가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브렉시트로 인해 반(反)세계화와 신(新고)립주의와 같은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경우, 세계 교역량 감소로 우리 경제의 근간인 수출이 흔들릴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브렉시트로 무역자유화가 퇴조하고 자국 중심의 보호주의가 강화되는 전환점에서 심리적 충격이 우리나라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왔다.

LG경제연구원은 ‘브렉시트 이후 국내외경제’ 보고서에서 “세계경제의 고성장을 이끌던 세계화가 역전될 경우 투자와 수요가 둔화돼 교역 위축과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나타날 수 있다”며 “세계교역 위축은 우리나라 수출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고, 기업 투자의지나 가계 소비성향이 낮아질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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