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정의홍

어진 소가 될까 한다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서
잘못된 이력서를 고쳐 써야지
더러는 모난 돌이었다가
봄이면 농무들의 종이나 되어
우직한 울음이라도 토할까 한다
아무리 춥더라도 생각은 옳아야지
나에겐 지혜란 아무 것도 없다
힘과 권력은 더구나 없다
모진 바람이 불어 닥칠 때마다
그저 눈만 껌벅이는
그 순하디 순한 소가 될까 한다.

 

[시평]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자화상을 한번쯤은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자신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일까. 아니면 자신의 모습으로 어떠한 것이 과연 어울릴까, 하는 생각 속에서 자화상을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그러나 실은 이렇듯 그려보는 자화상은 자신의 모습이기보다는 자신이 되고 싶은 그런 모습, 자신이 이상으로 삼는 그런 모습들이 대부분이리라.

시인은 어진 소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소는 순하고 우직하며 도무지 꾀를 부리지 않고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는 품성의 사람에 비유됨이 일반이다. 소와 같은 사람. 그저 두 눈만 껌뻑이며 힘과 권력과는 아무러한 상관을 지니지 않은, 때대로 우직한 울음이나 토해내는, 그런 사람.

정의홍 시인이 이 세상을 떠난 지도 어언 20년이 되었구나. 그의 살아생전 작은 소원대로, 소로 다시 태어나 세상 어딘가에서 그저 큰 눈만 껌벅이며, 먼 산이나 바라보며 되새김질이나 하고 있을, 그가 오늘 문득 보고 싶어진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