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조선인이 조선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을 어떻게 유죄라고 하는가. 그렇다면 이 세상에 사는 조선인 그 누가 무죄가 될 것인가"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1심과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한 양민이 판결에 불복해 현 대법원격인 조선총독부 고등법원에 낸 상고장 내용의 일부다.

24일 법원도서관(관장 강영호)이 발간한 조선고등법원판결록 제6권(형사편)에는 일제가 들불처럼 번진 '3.1운동'의 기세를 꺾고자 법의 이름 뒤에 숨어 저지른 잔혹한 탄압의 실상과 이에 온몸으로 항거하는 조선 민중들의 분노와 기개, 독립의 열망이 그대로 녹아있다.

1919년 3월 초 경북지역의 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했다가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돼 징역 6월을 선고받은 안모씨는 항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고등법원에 상고장을 냈다.

그는 "대한민족으로서 우리 한국의 독립을 기뻐해 축하의 만세를 불렀을 뿐인데 이것이 어떻게 보안법 위반의 범죄 행위인가. 죄의 유무를 다시 따져 명명백백한 판결을 받고자 한다"고 역설했지만 고등법원은 그의 상고를 기각했다.

법원은 독립운동 참여가 실정법 위반인지에 대한 법리적 설명 없이 "원심이 인정한 치안방해의 사실은 적용 법조에 해당하는 범죄를 구성함이 명백하므로 원심의 처단은 적법하다"는 해괴한 논리로 유죄를 정당화했다.

하루살이에 찌들어 바깥세상을 살필 겨를이 없는 벽지의 선량한 양민조차 일제가 휘두른 법도(法刀)의 희생양이 됐다.

신모씨는 그해 3월8일 대구시장에 장을 보러 갔다가 체포돼 1심과 항소심에서 징역 6월을 선고받자 "억울하다"며 상고했다.

신씨는 "곡식을 사러 갔다가 시장의 많은 사람이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길가에 서서 구경하는데 별안간 헌병 순사의 손에 포박됐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피고인의 주장은 원심의 사실 인정에 관한 직권행사를 비난한 것일 뿐 상고 적법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일부 양민의 상고장에는 순사의 고문에 따른 억지 자백의 실상도 엿보인다.

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6월을 받은 박모씨는 "옆에서 집회를 구경했을 뿐 참여하지는 않았다고 일일이 설명했음에도, 경관은 이를 듣지 않고 고성으로 구타를 가해 무리하게 자백을 강요했다"며 상고했으나 역시 기각됐다.

같은 죄로 징역 3월을 받은 이모씨는 "'조선독립만세'를 함께 외쳤지만 누구는 2주일의 구류를 받고, 어떤 자는 징역 1년의 중형에 처해졌다. 이러면 누가 법을 믿나"라며 일제의 '고무줄식' 형량 적용을 비판하기도 했다.

일부는 일제의 탄압에 끝까지 맞서 싸우겠다는 조선 민중의 기개와 독립을 향한 열망을 상고장에 담아냈다.

보안법 위반죄로 실형을 받은 고모씨는 "일본의 두 배나 되는 4천252년의 역사를 가진 조선에 대한 압박이 극단에 달하고 한ㆍ일민족의 차별이 도를 넘어섰는데 참담한 혈루로서 세월을 허송할 것인가"라며 분노를 토했다.

함께 실형에 처해진 남모씨도 "조선 독립은 원래 하늘이 정한 이치이다. 일본은 이번 독립운동을 통해 5천년 역사를 가진 2천만 조선혼이 한시라도 일본혼으로 변하지 아니함을 알아야 한다"며 "조선병합의 허황함을 포기하고 체포자를 즉각 석방하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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